시드니에서 영어 공부에 미쳐 있던 어느 날, 벌써 6개월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내가 시드니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목적은 셋 중 하나겠지. 내가 영어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 확인하러 오는 거거나, 그냥 남편 얼굴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오는 거거나, 아님 진짜 호주로 여행을 오거나, 아무튼 그녀는 처음으로 시드니에 여행을 오기로 했고, 나는 부랴부랴 숙소를 치우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여전히 식빵과 주스뿐이었다. (조금 더 노력해야 했나...)
아내와 함께 도착한 본다이 비치. 아름다운 해변에서의 하루를 만끽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아니, 신호등도 아니고 정류장도 아닌데, 갑자기 서더니 미동도 하지 않는 거다. 5분... 10분... 20분이 지나가고, 슬슬 뭔가 수상했다.
아내와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고장 난 거야? 사고 난 거야? 우리 언제 가?"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승객들은... 너무 태평한 거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어떤 사람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원래 이렇게 서 있어야 하는 것처럼. 아내는 점점 초조해졌고, 나는 영어가 그때까지도 많이 부족해서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몰랐다. "이거... 이거 그냥 기다려야 하나?"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1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드디어 버스 기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석에 앉으며 한 마디 던졌다.
"미안해요, 교대 시간이 늦었네요."
...뭐라고? 교대 시간?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버스는 종점도 아니고 중간에 지나는 어느 버스 정류장에 멈춰 있었던 거고, 원래 3시에 교대해야 할 새로운 버스 기사가 무려 1시간이나 지각한 거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이걸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거다. 1시간 동안 승객들은 조용히 기다렸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고, "버스는 언제 출발하나요?"라고 묻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게 바로 호주의 태평한 마인드구나...
만약 이게 한국이었다면? 아마 버스 안에서 대규모 시민운동이 펼쳐졌을 거다. 승객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이건 기사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님?"이라며 전화번호를 검색하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서 "지금 이 상황 실화냐?"를 외치고 있었겠지. 하지만 호주는 달랐다. "아, 뭐... 언젠간 오겠지." 이 마인드.
아내와 나는 그날 진짜 문화 충격을 제대로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나도 이제... 좀 더 여유를 가져야겠어." (하지만 한국인 DNA가 어디 가나, 결국 난 평생 조급한 성격을 못 고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