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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버스가 기울어진 이유"

타이타닉급 긴장감과 호주식 여유

by 호주아재

또 하루는, 평소처럼 학교에 가려고 딸기잼 바른 식빵 한쪽을 입에 물고 아침부터 정신없이 뛰쳐나왔다. 호주는 회사든 학교든 아침 8시나 8시 30분쯤 일찍 시작하는 문화라서, 나도 8시 수업에 맞춰 최대한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7시 40분쯤 됐을 때, 갑자기 버스가 또 서더니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거였다.
이상하잖아? '아, 또 버스 기사 교대 시간이냐? 설마 이 출근 대란 시간에...?'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칙칙칙---" 하면서 버스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거였다. 그것도 인도 쪽으로 아주 가깝게... 아니, 버스가 기울어진다고?

나는 순간 '이거 타이타닉 이냐? 대형 사고 나는 거 아니야?' 하면서 심장 쫄깃해졌다. "지금 뭐야? 바퀴 빠진 거야? 문짝 떨어진 거야? 버스 이러다가 굴러가는 거 아냐?" 머릿속이 난리가 났다.
그러더니 버스 기사가 운전석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아, 이거 사고 난 거 맞는구나. 드디어 나의 지각 한번 없는 개근 출석 기록이 이렇게 깨지는구나...' 하고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는 심각한 얼굴이 아니라 너무 태연한 거였다.
그러고는 버스에서 내려서 뒤로 가더니 직접 휠체어 탄 장애인 승객을 천천히 밀어서, 기울어진 출입문 쪽으로 이동시켜서 버스에 태우는 것이 아닌가?


"아, 이 버스가 기울어진 이유가 이거였구나!" 장애인이 탈 수 있도록 버스 자체를 기울여준 것이다. 그리고 기사가 조심조심 휠체어를 태운 뒤, 다시 유유히 자리로 돌아가 운전대를 잡더니 출발하는데...

여기서 더 충격적인 건 이걸 보고 있던 승객들 반응이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창밖 보면서 평온 그 자체...

아니, 한국이었으면 "아니 이게 지금 몇 시인데!" "1분 1초가 아까운 출근 시간에 버스를 세우고 난리야!" "회사 늦으면 기사님이 월급 줄 거야?!" 이러면서 아수라장이 됐을 텐데...

근데 여긴? 다들 여유롭게 기다리는 거다. 마치 "당연한 일이지, 장애인이 먼저 타야 하니까" 하는 분위기.

그 순간 '와... 이 나라 진짜 대단하다... 장애인이 우선이고, 사람들이 다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라면... 여기서 진짜 한번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확 꽂혔다.

이때부터였다. "나는 호주에서 살아야 한다!"
영어 배우러 왔다가,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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