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07년 8월 14일, 드디어 영주권의 첫 발을 내딛기 위해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브리즈번. 그렇게 8.15 광복절에 나는 독립이 아닌, 전쟁 같은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착과 동시에 예상대로 난관이 닥쳤다. 낯선 환경과 길, 시드니와는 전혀 다른 교통 시스템, 은행 계좌 개설과 새로운 핸드폰 개통, 그리고 당장 머물 곳을 찾아야 하는 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뭐부터 해결해야 쉽게 풀릴까?"
차분히 생각하려 했지만,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탓에 몸은 천근만근.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며 뇌는 작동을 거부했다. 숙소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브리즈번 시티로 향했다. 브리즈번 Central Station에 도착 후, "그래, 배부터 채우자!" 정신을 차리고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먹었다. 하지만 먹는 둥 마는 둥. 피곤함에 눌려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숙소부터 해결해야 했다. 캐리어 가방을 질질 끌며 브리즈번 시티의 백패커스(저렴한 숙소)를 찾았다. 다행히 빈 방이 있었고, 체크인 후 침대에 몸을 던지자마자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정신이 들자 창문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군."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추스르고, 노트북을 꺼내 브리즈번의 렌트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 제2막, 그 서막이 이렇게 열렸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렌트 정보를 찾다 보니 보증금, 계약 기간, 심지어 렌트비까지 상상 이상이었다.
'이 돈이면 한 달 먹고살겠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미 브리즈번에 발을 들인 이상, 후퇴란 없었다. 우선 저렴한 방을 찾기 위해 무작정 몇 곳에 전화를 돌렸다. 첫 번째 집은 '한 주에 120불'이라는 너무 착한 가격이었지만, "화장실에 바퀴벌레랑 같이 살아도 괜찮아요?"라는 질문에 전화를 급히 끊었다. 두 번째 집은 150불이었지만, "집주인이 애완용 뱀을 키워요. 가끔 침대에도 올라가요."라는 설명에 '사람이 먼저다'를 외치며 패스.
결국 적당한 가격과 안전한 환경이 조화를 이루며, 학교에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곳을 찾느라 몇 날 며칠을 허비했다. 그러던 중, 한 곳에서 "보증금 없이 바로 입주 가능" 이라는 마법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한국 유학생이 아파트 한 채를 렌트하고, 그 안에서 여러 사람이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아파트. 즉,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쓰는 "닭장셰어"였다. 나의 프라이버시는 우주로 날아가고 없었다.
"이건 좀 심한데..." 망설이는 나에게 집주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들 좋은 학생들이에요."
그렇게 나는 방 2개, 화장실 2개짜리 아파트에서 6명과 함께 뜻밖의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디 이곳에서의 첫날밤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마무리되길 바라며, 낯선 플랫메이트들과 첫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곤 한국에 남아서 호주로 이사할 짐 정리를 하며 11월에 출국하는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힘없이 전화를 했다.
"렌트 하우스는 자기가 들어오고 한국에서 짐이 오는 시기에 맞춰서 차분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