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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재의 생존기: 영어, 친구, 그리고 렌트 전쟁

by 호주아재

본격적인 호텔 매니지먼트 전문학사 과정을 위해 우선 6개월 과정의 비즈니스 영어 수업을 들어야 했다.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speaking, writing, listening, reading, 그리고 business English까지 다섯 과목의 수업과 엄청난 양의 과제들까지….
"와, 이건 지금까지 배워오던 영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하지 않으면 나보다 한참 어린아이들 따라가기 힘들겠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학교 과정을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정신없는 학교 생활에 익숙해졌고, 반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 김혜진: 진 언니(Jin): 학교에서 유일하게 나보다 두 살 연상인데, 성격이 호탕하고 말괄량이에, 싱글이신 진 언니! (영어 이름이 "진"인데 모두 언니라고 불러서 나도 편하게 진 언니라고 불렀다. 내 영어 이름이 '오빠'였던 것처럼…) 한마디로, 반의 영원한 맏언니이자 분위기 메이커!
• 이유정: 에이미(Amy): 부산 출신의 24살, 귀여움과 착함을 장착하고 나를 잘 따르던 동생. 뭔가 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데, 정작 본인은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게 함정.
• 김정은: 지니(Jinny): 부천 출신의 27살, 키 크고 쿨한데... 어딘지 모르게 허당미가 넘치는 친구. 영화 속 '천재지만 어딘가 어설픈 캐릭터' 그 자체.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해서 다들 빵 터지곤 했다.
• 박지훈: 켈리(Kelly): 울산 출신의 22살, 10미터 떨어져서 보면 탤런트 박보영이 따로 없었지만, 가까이 가면 말괄량이 + 에너자이저! 반짝반짝한 눈빛과 똘똘한 표정으로 늘 뭔가 거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 같았지만 정작 고민하는 건 "밥은 못 먹어도 베이리스(커피맛이 나며 우유에 타먹는 양주)는 마셔줘야지"... 수준이었다.
• 신정미: 제이미(Jamie): 대전 출신의 22살, 누가 봐도 한국에서 공부 좀 했을 것 같은 스마트한 분위기의 친구. 시험 전날이면 모든 친구들의 멘토로 변신, 하지만 가끔은 이론보다 실전에 약한 허당 매력이 있었음.

앗! 그러고 보니 다 여자들이네???
나는 이미 학교에서 결혼한 아재인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었고, 그런 아재가 점심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하면 응큼한 남학생들보다는 오히려 편했던 것 같다. 물론 내 얼굴 생김새도 부담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나중에 알게 됐지만 홀아비 티가 나서 불쌍해서 챙겨줬다나 뭐라나ㅠㅠ….)

거의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도시락을 싸 오기보단 근처 편의점이나 $8.50 런치스페셜을 파는 식당에서 사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이렇게 친구 같고 똑똑한 동생들에게 영어 공부도 배우고 챙김도 받으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11월이 되었고, 드디어 기다리던 사랑스러운 와이프와 재회했다. 그리고 서둘러 렌트를 알아보기 시작했지. 그런데 이건 셰어하우스를 구할 때보다 더 큰 난관에 부딪혔다. 렌트비는 너무 비싸지 않은지,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인지, 교통비를 절약하며 학교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인지, 슈퍼마켓이 가까이 있는지, 공원과 문화시설은 주변에 있는지 등등 꼼꼼히 따져봐야 했다.
특히 무엇보다도 렌트 계약이 어려웠던 건, 내가 직접 렌트한 경력이 없어 집주인들이 나와 쉽게 계약을 맺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던 중 정말 운이 좋게도 싸우스뱅크(브리즈번 시티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방 두 개, 화장실 두 개짜리 아파트를 렌트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렌트비…. 우리 부부가 살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래서 렌트비를 충당하기 위해 셰어생을 구하기로 했다.

처음 렌트했던 Southbank Allegro Apartment (출처: 아파트먼트 홍보 싸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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