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의 개인사에 참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주방도 어느새 익숙한 내 터전이 되었다.
매일 같은 루틴, 같은 요리, 반복되는 하루.
셰프 경력 2년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쳇바퀴 같은 삶이었다.
그러던 중, 작은 반전이 찾아왔다.
나는 학교에서 18개월 만에 수석으로 조기 졸업(Early Graduation)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게 뭐 대단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겐 이게 엄청난 의미였다.
더 이상 수업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고, 시험에 쫓길 일도 없다.
오직 일에만, 실력 쌓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영주권 취득을 향한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졸업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그렇게 바라던 호텔에서 정식 취업 제의를 받았다.
캐주얼 코미 셰프(Casual Commis Chef)라는 타이틀이었지만, 나에겐 꿈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이제 내가 선택한 무대에서 당당히 일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한 건 단연코 아내와 호주 가족들이었다.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우리는 그냥 맥주잔을 부딪히며, 마냥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마시고, 또 웃었다.
"첫 주급 $400."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이게… 내 손으로 번 돈이구나."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거의 2년 동안 쉼 없이 허드렛일을 하고, 채소를 다듬고, 온몸에 기름 냄새를 묻히며 버텨온 시간의 증표였다.
"자기야, 첫 주급이 입금됐어. 생활비로 쓰자."
아내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건 당신이 번 첫 번째 돈이잖아. 의미 있게 써야지."
나는 당황했다. "아니, 그래도… 호주에서 살면서 아직 생활비 한 번을 못 줬는데..."
그러나, 아내는 이미 뭔가 결심한 눈치였다.
다음날 저녁, 아내가 내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자,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
나는 상자를 열어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눈앞에 놓인 건 날렵한 칼날을 가진 하이엔드 셰프 나이프.
손잡이를 쥐는 순간, 전율이 흘렀다.
묵직한 밸런스, 손끝에서 느껴지는 완벽한 그립감. 이건 단순한 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는 주방에서 학교실습 때 받았던 저가의 칼을 썼다.
무딘 칼, 손에 맞지 않는 칼, 그저 주어진 도구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 쥔 건 진짜 칼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이제 주방에서 누군가의 보조가 아니라, 진짜 셰프로 서야 하잖아?"
나는 천천히 칼을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내 첫 주급은 하나의 물건이 아니라, 내 꿈을 쥘 수 있는 첫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