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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버려진 꿈, 다시 불꽃이 되다”

by 호주아재

다음 날 오전부터 나는 숨 가쁘게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인터넷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올리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레스토랑에는 무작정 지원했다. 면접을 대비해 거울 앞에서 수없이 연습했고,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열 군데가 넘는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어떻게 한 군데도 연락이 없냐..."

마음속이 점점 얼어붙었다.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사장이라도 주방 경력이 1년밖에 안 된, 그것도 영어도 능숙하지 않은 아시안 초짜 셰프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경험이 있는 현지인 셰프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애써 위로하려 했지만, 사실 위로조차 되지 않았다. 절망감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실습 마지막 날, 무거운 마음으로 호텔 주방에 들어섰다. 오늘이 끝나면 난 다시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Executive Chef가 나를 불렀다.

"이안!, 잠깐 사무실로 와볼래?"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건 뭐지? 혹시...? 간절한 기대를 품고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이안, 네가 열심히 일한 거 나도 알아.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당장은 포지션이 없어서 널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야!."

'알아!! 알아!! 알고 있는 말을 왜 또 하고 있어? 염장 지르려고 부른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한 번 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여기까지인가?..."

"염장질" 중인 고등어

하지만, 셰프가 말을 이었다.

"네가 계속해서 경력을 쌓았으면 해. 나도 네가 훌륭한 셰프가 될 거란걸 알아.... 그래서 일단 내가 직접 총무과랑 회계팀에 연락했고, 비록 네가 무보수 견습생이지만, 너의 근로자 보험 문제를 다 해결했어. 네가 원한다면, 계속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어. 그리고 꼭 약속할게. 포지션이 생기면 가장 먼저 너한테 연락할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힘이 풀렸다.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 사실 이미 흘러내리고 있었다.

"셰프!!...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셰프를 덥석 끌어안았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더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주방으로 돌아가니 알피가 내 표정을 보더니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All good mate? Are you ready today?"

그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난 버텨낼 것이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 동생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또 차올랐다.

그 손길 속에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었다.
그동안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지켜주고, 묵묵히 나를 응원해 주던 사람.

그날 밤, 나는 아내 몰래 조용히 울었다.
소리 없이, 베개를 적시며 오래도록 울었다.

그리고 결국, 아내와 상의 끝에 정말 힘들 때를 대비해 숨겨두었던 비상금 천만 원을 꺼내기로 했다.
호주에 처음 올 때부터 ‘마지막 순간’에만 쓰자고 다짐하며 손도 대지 않았던 돈이었다.

‘이걸 쓰면... 정말 끝인데…’

그래도, 다시 한번 해보기로 했다.
끝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나는 또다시 불꽃을 피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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