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실전이었던 리스닝
스터디룸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다운로드하여 온 리스닝 문제가 휴대폰 스피커로 재생되는 그 순간부터 방 안은 시험장이었다.
누가 물을 마시거나, 의자를 삐걱대는 일 따위는 절대 없었다.
문제 풀이가 끝나면 늘 조용한 정적.
그다음엔 누군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 나 이번 섹션 4, 하나도 못 들었어.”
“갑자기 말 왜 이렇게 빨라져? 진짜 미쳤어.”
“그거 영국 억양이야. 악명 높다고!”
때로는 듣기보다 억양 해석이 더 어려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스터디룸의 리스닝은 진짜 시험장보다 더 진지했다는 점이다.
리딩은 우리의 전쟁터
우리는 리딩도 절대 대충 하지 않았다.
캠브리지 IELTS 최신판을 구해다가 매일 새로운 지문을 골라 풀고, 그것도 모자라 기출문제 위주로 연습 그리고 복습...
타이머는 정확히 60분. 스타트 버튼이 눌리면 말 한마디 없이 고요해졌다.
지문이 끝날수록 머릿속은 하얘지고 손목은 아파졌지만,
진짜 고비는 항상 3번째 지문이었다.
“와… 또 True, False, Not Given이야.”
지웅이가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난 진짜 Not Given 문제 만든 사람 만나고 싶어.”
“왜?”
“밥 사주고 물어볼 거야. 왜 그런 거 냈냐고.”
블레어는 정답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왜 False야… 진짜 너무 섭섭하다.”
결국 우리는 문제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부터 배웠다.
선생님도 놀란 라이팅 폭탄
"오빠! 라이팅 할 때 문장에서 'a'는 나만 아는 거고, 'the'는 누구나 다 아는 거!!"
블레어가 열정적으로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설명했다.
"예를 들어, 처음엔 a special table이라고 써. 근데 한 번 소개했잖아? 그럼 그다음부터는 the table이 되는 거예욧!!”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속으론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그냥 테이블 하나 갖고 왜 이렇게 복잡한 건데…’
하지만 작은 정관사 하나가 라이팅 점수 0.5점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난 후, 그 어떤 관사도 소홀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라이팅은 우리 스터디그룹의 자존심이었다.
일주일에 세 편씩 써서 금요일마다 학원 선생님께 교정 요청. 그 양에 놀란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이걸… 다 썼다고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다음부터 선생님의 첨삭 스타일이 변했다.
붉은 펜이 점점 줄어들고,
“좋은 표현입니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빠, 나 이번에 한 문장도 고쳐진 거 없어!”
“진짜? 이제 너는 첨삭이 필요 없는 여자야.”
아직 실제 점수는 안 나왔지만,
우린 서로에게 먼저 점수를 매기며 자존감을 쌓고 있었다.
스피킹, 말싸움도 훈련이다
스피킹은 단순한 말하기 시간이 아니었다.
그날그날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며
논리, 발음, 억양, 심지어 태도까지 다듬는 시간이었다.
“오늘 주제는 ‘학교에서 휴대폰 금지’ 어때?”
“난 반대. 요즘은 공부도 휴대폰으로 하는데?”
“난 찬성이야. 수업 시간에 게임하는 애들 봤거든.”
이 열띤 토론의 결론은
“사실 학생보다 선생님이 더 많이 본다”였다.
하지만 그런 논쟁 속에서도 날카로운 지적은 잊지 않았다.
“근데 오빠, 아까 ‘fundamentally’ 발음 좀 이상했어요.”
“… 의견은 존중 안 하고, 발음만 잡냐?”
우리는 농담 따먹기 하듯 공부하지 않았다.
진짜 시험처럼 리스닝을 듣고, 타이머 맞춰 리딩을 풀고, 매주 세 편의 라이팅을 쓰며, 발음까지 교정받으며 하나씩, 꾸준히, 집요하게 쌓아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우린 더 이상 처음의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을.
정관사 하나에 당황하던 나는 이제 블레어의 설명 없이도 ‘a’와 ‘the’를 구별하고 있었고,
리스닝 억양에 무너지던 우리는 이제 스피커 볼륨만으로 발화를 예측하게 되었고,
라이팅은 첨삭보다 칭찬이 많아졌고,
스피킹은 말싸움이 아닌 논리 싸움이 되어 있었다.
이건 단순한 영어 공부가 아니었다.
우리끼리 만든, 아주 진지한 결투장이자 성장의 기록이었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2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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