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말 미치겠다, 끝없는 점수의 늪"

by 호주아재

아이엘츠.

처음엔 그냥, 영어 시험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시험은 내 삶의 중심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7번째, 8번째 시험... 나는 그 숫자를 셀 때마다 가슴이 조여왔다.


항상 같은 결과.

0.5점, 혹은 딱 1점이 모자랐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그 점수 차이 때문에,

나는 또다시 몇 주간의 긴장을 반복했고, 새벽까지 책을 붙잡았고, 수십 장의 에세이를 써댔다.

마치 끝이 없는 미로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결과 발표 날.

손끝이 떨리고, 심장은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이번에는... 제발... 제발..."


하지만 모니터에 적힌 글자는 너무도 차가웠다.


Overall: 7.0 (Writing: 6.5)

Overall: 7.5 (Reading: 6.0)

Overall: 8.0 (Reading: 6.5)


그 숫자들이 내 눈앞에서 뱅뱅 돌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 하, 미치겠다.”


옆에서 절망에 찬 내 결과를 듣고는 블레어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그 표정은 안쓰러움과 놀림 반이 섞인 묘한 얼굴이었다.


“오빠, 이 정도면 아이엘츠가 오빠를 안 놔주는 게 아니라... 오빠가 아이엘츠를 못 놔주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웃음이 났다가도,

웃음 끝자락에 슬픔이 씹혀 있었다.


“... 나도 그러고 싶어!!”

진심이었다.


도대체 0.5점이 뭐라고,

왜 이렇게 내 삶을 조여 오는 건지.

왜 그 작은 숫자 하나에 내가 이렇게 무너지는 건지. 그게 억울하고, 또 슬펐다.

9번째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길.

마치 난 평생 이 시험의 고객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시험에게 삶을 저당 잡힌 느낌. 내가 시험을 보는 건지,

시험이 나를 가지고 노는 건지.

머릿속이 하얘졌고, 가슴 한편이 서러웠다.


시험장 밖으로 나가는 길에,

나는 그냥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었다.

말도 하기 싫고, 표정 관리도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떨어질 거라는 불안감,

그리고 자꾸만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차가운 바람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지웅이가 옆에서 조용히 내 어깨를 두 번, 툭툭 쳤다. 말없이도 따뜻한 손길이었다.


“형, 어차피 결과는 2주 후에 나오잖아요. 이번엔 잘 봤겠죠.”


그의 말은 일부러 가볍게 던진 듯했지만,

그 안에 진심이 있었다.


“너무 먼저 상심하지 마요. 어차피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누적이잖아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머릿속에 울리듯 되뇌어졌다.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누적이다...’


그 한마디가,

지금껏 내가 했던 모든 노력과 쏟아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웅이는 이어서 말했다.

“오늘은 그냥 다 잊고, 술 한잔 해요. 제가 살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가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너무 쉽게, 너무도 순식간에...


나는 고개를 홱 돌려, 지웅이 몰래 눈물을 닦았다.

그 눈물이 들키는 게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 말 한마디에 너무 깊이 위로받은 내 마음이 어쩐지 또 서러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

.

.

.

2주 후 결국, 나는 10번째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2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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