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손에 들린 꽃놀이패가 화려하다.
중국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제2의 패권국가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적어도 시진핑은 그렇게 확신했을 것이다. 그 믿음 위에 ‘중국몽’을 올려세우고, ‘일대일로’라는 대륙 유라시아 통합의 깃발을 휘날렸다. 그러나 이쯤 되면, 미국이 들이부은 똥물이 말라붙고, 위에 먼지가 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똥장군 트럼프가 화려하게 다시 복귀했다! 이 조합은 시진핑에게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날 정도로 울화를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국은 지금 내우외환이라는 말의 교과서적 표본이 되어가고 있다. 일대일로는 뜻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파트너 국가들의 고쟁이는 헐어서 먼지가 풀풀 날리고, 정작 중국은 돈만 빠져나간다.
그 와중에 중국의 곳간에도 변고가 생겼다. 중국의 대형 건설업이 무너지니 지방은행들이 줄줄이 주저앉고 있고, 국민의 지갑은 닫혔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못 찾는다.
AI도, 반도체도, 클라우드도 다 좋다지만, 그걸 만들 돈줄이 말라가고 있는데 좋은게 좋을리가.
외교는 또 어떤가.
‘전랑외교’로 불리는 공격적 외교는, 실상 국제사회의 웬수 제조기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혼자 왕좌에 앉고 싶었던 중국’은, 모두가 등을 돌린 방 한가운데 남겨진 기이한 제왕이 되었다.
고객이던 유럽도 몸져누웠다. 독일은 주저 앉았고, 프랑스는 리더십이 무너졌다. 폴란드와 헝가리, 발트 3국만이 신이 나 있다. 왜? 군비경쟁 시작이니까.
러시아와의 신냉전을 앞세운 미국의 무기 장사 속에서, 동유럽은 21세기형 병참기지로 탈바꿈 중이다. 한국도 이미 이 경쟁에 깊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중국은? 전랑외교로 신나게 뱉어놓은 거, 이제와서 닦을 물티슈조차 없는 상황이다.
외교 스탠스가 바뀔 기미는 있다. 전랑 대신 ‘미모’를 앞세운 중국, 세련되고 부드러운 척,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뿔싸. 중국계 캐나다인 마약사범을 넷이나 사형시켜버렸다. 멍완저우 시즌2다. 이쯤 되면 미인계도, 이미지 쇄신도, 물 건너간 얘기다.
중국은 대만을 칠 수 없다. 전쟁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쇼는 계속된다.
대만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전투기 출격을 반복하며, 대만의 진을 뺀다. 동시에 미국의 신경을 박박 긁는 작전이 예상된다.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과 같은 긴장감을 심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북한과 러시아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중국은 약이 오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북한을 대놓고 도울 수도 없고, 러시아와 척을 지기엔 자국 경제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나마 남은 건 ‘눈치’인데, 그것마저 사방에서 막혀 있다.
그런데, 이런 지형 속에서 키는 러시아가 쥐고 있다. 푸틴의 손에 들린 꽃놀이패가 화려하다.
러시아는 국제적 고립 속에서 북한이라는 묘한 존재를 손에 넣었다. 중국의 뒷마당에서 뚝 떼어낸 조각 같은 북한은 이제 러시아와 군사기술, 무기생산, 심지어 우주 분야까지 연결하려 하고 있다. 푸틴 입장에선 말년에 이게 무슨 복인지 모를 일이다. 유럽과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푸틴은 게임의 판을 바꾸는 중이다.
미국은 갈수록 파편화되는 지정학에 피로해지고 있고, 유럽은 안보보다 에너지와 식량에 더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중국은 숨이 차고, 일본은 아직 준비 중이다. 이런 판에서, 러시아는 행동하는 국가다. 실제로 병력을 움직이고, 탄약을 실어 나르고, 외교 대신 총포의 소리를 택한다. ‘힘은 쓰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푸틴은 몸으로 증명 중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난처한 일이다. 한미일 공조를 외치면서도, 러시아와의 외교 루트는 살려야 하고, 북한은 점점 더 예측불허로 변해간다. 게다가 국내 정권이 바뀐다면? 한일관계는 물론, 대러시아정책까지 죄다 밑바닥부터 다시 써야 한다. 푸틴의 꽃놀이패는, 한국에게는 다면적인 딜레마로 작용한다.
한편, 일본은 어떤가.
만약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고노 다로같은 동키호테가 총리가 된다면, 한일관계는 과거와 다른 궤도를 탈 수 있다. 그는 자민당의 전형적 보수 정치인이 아니다. 디지털, 개혁, 글로벌 감각이 뚜렷한 실용주의자다. 총리가 되면, 협력 가능한 한국과는 강하게 공조하고, 이념적으로 충돌하는 한국 정권과는 차갑게 거리를 둘 것이다.
한국이 보수(엄밀한 의미에서는 보수를 참칭하는 극우정권이라고 봐야겠지만)정권이라면? 고노는 역사 문제를 봉합하고, 미일한 군사협력을 강화하려 들 것이다. 헌법 개정을 통한 일본의 재무장도 노골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의 군사협정도 본격화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이 민주당(NL, PD계열 운동권의 순진하고 멍청한 이상주의자들을 털어내지 못하는 이상,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이라고 해봤자, 정권이라면? 고노는 전략적으로 거리를 둘 것이다.
협력보다는 견제, 파트너십보다는 조정 관계로 전환할 것이다. 한국은 미일 테크 블록에서 ‘주도자’가 아니라 ‘수행자’가 될 위험이 있다.
그런 와중에 북한과 러시아가 사이좋게 들러붙어 있으니, 중국은 이를 견제하고 싶어도 대놓고 나설 수 없다. 북한을 직접 지원하면, 국제사회에서 또 하나의 적국 이미지가 된다. 러시아와 척을 지면, 에너지와 무기 수출 시장을 잃는다. 결국, 중국은 ‘지켜보는 자’의 위치로 밀려났다.
결국, 지금의 세계는 ‘힘의 대결’이 아니라 ‘위치 싸움’의 시대다. 누가 목소리를 높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버티고, 더 뻔뻔하게 움직이며, 더 계산적으로 망가뜨릴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시진핑은 패권국가의 타이틀은 가졌으나 행동력을 잃었고, 푸틴은 패권은 없지만 실질적 영향력을 움켜쥐었다.
이건 역설이다. 역설의 시대, 역설의 플레이어들. 그 안에서 한국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누군가는 말한다. 푸틴은 말년에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판을 받았느냐고.
하지만 정작 푸틴은 웃으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복이 아니라, 남들 다 집에 가고 나서 혼자 남아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