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고려인삼사 막내딸

내 고향 진안 인삼가로등이 마음에 켜질 때..

by 이정미 Mar 30. 2025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고려인삼사.

내가 태어나고 자라서 결혼 전까지 살았던 내 고향, 나의 근원이자 뿌리인 곳이다. ​

나는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이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던 어린 시절부터 내 이름은 고려인삼사 막내딸이었다.

시골에서 살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시외버스터미널과 진안군에서 제일 큰 진안읍내 시장, 집배원들의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수없이 세워져 있던 우체국, 그 트라이앵글 정중앙 알짜배기 노른자 자리에 위치했던 고려인삼사! 아마도 인삼을 파는 곳 중에서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지 않았나 싶다.

그 덕분에 인삼을 거래하고자 끊임없이 들락거렸던 사람들의 입소문과 유난히 엄마와 똑 닮은 내 얼굴까지 거들어 그 시절 나는 언제나 고려인삼사 막내딸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도 그게 크게 싫지 않았던걸 보면 아마도 난 우리 집이 꽤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가게 안은 인삼을 들고 와 팔려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싼값에 인삼을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다

그리고 가게 밖은 아침부터 노점상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큰 파라솔과 천막을 치며 장사를 준비했다.

우리 집 앞은 주로 삼천 원, 오천 원, 만원 하는 화려한 꽃무늬 티셔츠와 각종 일바지등의 옷을 파는 목소리 쩌렁쩌렁했던 아주머니의 노점상이 주로 차지했다. 바람이 불면 파라솔 기둥에 걸린 옷걸이에 걸린 옷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형형색색의 풍경을 만들어냈고, 난 그 풍경을 가게 유리문 너머로 구경하는 게 좋았다.

알뜰해 보이는 젊은 여자들부터 허리가 살짝 굽은 할머니들까지 제각각 마음에 드는 옷을 꺼내 들어, 파라솔 밑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거울 앞에 서서 몸에 옷을 대어보고는 노점 주인아주머니와 가격 흥정을 하며 웃고 얘기해 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장날 우리 가게 안팎의 풍경은 나와는 상관없이 늘 분주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장면들.

가게 한편에는 밭에서 금방 캐내온 흙 묻은 인삼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가게 안 빨갛게 달아오른 석유난로 위 커다랗고 노란 주전자에서는 인삼에서 떨어진 인삼뿌리들로 가득한 물이 끓고 있었다.

수증기 끝에서 묻어나던 물 머금은 촉촉한 인삼냄새.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들과 함께 그때 코끝에 묻어 가슴까지 박힌 인삼냄새가 아직도 내 곁에서 살아있다.

나에게 고향은 인삼냄새.

귀하지만 귀하지 않았던 쓰고 아릿한 인삼 냄새.

그것은 나에게 아빠 엄마 냄새였다.

그 시절의 나와 엄마 아빠를 소환하는 고려인삼사.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던 그 시절의 부모님과, 그때 나를 스쳐 지나갔던 모든 사람들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오늘처럼 추워서 발을 동동거리며 겉옷을 여미게 되는 온기 없는 쓸쓸한 날.

어둠이 낮게 깔리면 진안거리에 하나둘씩 켜지던 인삼 모양 가로등처럼 내 맘속에 추억의 불빛이 탁하고 켜진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사람 기척이 없어진 채로 점점 낡아 스러지고 있는 내 고향 고려인삼사.

언젠가 결국엔 사라질 내 고향이 내 머릿속에서도 사라질까 봐 가슴이 아려와 오늘 문득 그리고 또 그려본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