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yan Choi
Oct 15. 2024
얼마 전 <삼시세끼>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는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이 고정 출연하고 있는데, 게스트로 나온 가수 임영웅이 두 배우의 작품을 미리 공부해 와서 그중 인상 깊었던 것들에 대해 세심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봉준호 감독이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장면도 꽤나 오래 머릿속에 남았었다. 이탈리아 영화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탈리아의 유명 거장 감독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며 이탈리아 영화와 그 전통에 대해 존경을 표했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무엇이든 미리 준비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두 장면에서의 인물들의 행동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위한 그런 준비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준비하는 삶의 태도가 중요한 이유이다.
나 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파악해 가곤 한다. 만날 사람이 교수라면 최근 쓴 논문을 구해 미리 읽고, 작가라면 인터뷰 내용을, 관계사 임원이라면 그 회사와 관련된 최근의 이슈를 파악해 가는 것이다.
이런 습관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생각해 보았더니, 대학 시절 잠깐 했었던 학보사 기자 때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유명 작가 한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었었던...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그분이 유명한 작가이기도 했었지만, 혹여라도 나의 수준 낮은 질문으로 망신이라도 당하진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그 작가의 모든 책과 평론을 모조리 읽으며 질문지도 만들고 나름의 치밀한 준비를 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가 가져온 책에 작가의 사인을 받으며 처음의 낯설고 딱딱한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고, 그러는 가운데 준비해 온 것을 조금씩 풀어내며 순조롭게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의 좋은 기사가 나오게 되었다.
내 성격 탓도 있다. 순발력 있게 대응하거나 애드리브를 하는 성격이 못되기에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미리 준비하는 습관이 들었던 것. 물론 당연하게도 완벽한 준비는 불가능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자신감이 생겨났다.
제 작년에 CEO와 미국 출장을 같이 가게 되었을 때는 미리 그분이 쓴 책을 읽고 갔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좋았는지 미리 말할 것을 준비했다. 또 와인을 좋아하신다기에 출장기간 동안 말동무라도 하기 위해 몇 권의 책과 유튜브로 와인을 공부해 갔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최소한의 정보라도 미리 알고 그것으로 첫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작은 준비의 유무가 큰 격차를 만들어낸다고 확신한다. 비단 사람을 만나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도 대부분 적용해 보는 나만의 원칙이다.
처음부터 탁월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사실 탁월함은 대부분 오랜 기간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단순하고 일시적인 즐거움을 멀리하고 오랫동안 숙성된 생각과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중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다만 요즘 들어 점점 미리 준비하는 습관이 사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제는 내가 좀 안다는 생각에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듯하다. '대충 이 정도 하면 되겠지. 많이 해봤잖아.' 이런 생각이 들며 교만해지곤 하는 것이다.
탁월함을 보이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될 때면, 그 사람의 수면 밑에 존재할 수많은 준비의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본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요즘, 준비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