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왜 진한(辰韓)이 대한민국의 정통인가(2)

[2화] 유민의 땅과 삼한의 탄생

by 서도운

[2화] 유민의 땅과 삼한의 탄생

삼한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유물과 지리의 말에 귀 기울이며


1. 무명의 시간, 유물이 말하다


역사는 이름보다 형상을 더 오래 기억한다. 우리가 오늘날 삼한이라 부르는 이 고대의 정치 집단들은, 당대인에게조차도 명확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존재는 기록보다 오래된 흔적, 말보다 조용한 증거 속에 남아 있다.


기원전 15세기 무렵부터 동북아는 거대한 인구 이동의 흐름 속에 놓였다. 요동과 요서, 만주와 하북 일대의 세력이 청천강과 대동강 유역을 따라 남하했고, 이 흐름은 한반도 중부를 지나 남부로까지 이어졌다.


이주민의 발길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토기와 무기, 매장 방식은 지금도 땅 속에서 증언을 계속한다.


무문토기, 점토대토기, 비파형 동검, 팽이형 토기

—이 유물들은 민족이란 개념이 형성되기 전, 혈연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뭉친 이들이 겪은 충돌과 혼합, 그리고 생존의 여정을 상징한다.



2. 마한 – 넓고 느리게, 강역과 전통의 공동체


삼한 중 가장 넓은 강역을 지녔던 마한은 충청·전라 일대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연맹체였다.


이 지역은 고대부터 토착 세력이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외부 이주의 흐름도 상대적으로 완만했다. 청동기 시대부터 형성된 팽이형 토기 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정착했고, 외래문화와의 융합도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마한은 연맹체 국가였다. 중앙의 왕은 상징적인 존재에 가까웠고, 각 소국의 군장들은 독립성을 유지한 채 협력과 경쟁을 반복했다. 이러한 정치 구조는 중앙집권으로 나아가기에 다소 한계가 있었지만, 그만큼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구조였다.


무엇보다도 마한은 ‘지속’의 공간이었다. 수천 년을 이어온 토착 기반 위에 삼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 내부에서는 오랜 신앙, 공동체의 규칙, 의례와 축제가 계승되었다.

이것은 한반도 남부의 민간 문화, 생활방식, 언어의 층위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름 없는 역사’다.

팽이형 토기




3. 진한 – 이주와 혼혈의 용광로


진한은 삼한 중 가장 격동적이며 빠르게 변화한 공동체였다. 중심지는 낙동강 중상류, 지금의 경북 내륙 지역이다.

이 지역은 후조선의 붕괴, 위만조선의 정치적 충격, 예·맥계 이주민의 남하, 그리고 한사군의 등장 등 다양한 외부 사건과 맞물리며 단기간에 큰 인구 이동이 일어난 곳이다.


진한 지역에서 출토된 점토대토기 문화는 단순한 도기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북방 세력의 이동과 재편, 즉 지배 엘리트 혹은 종교·의례 집단의 주도적 이동을 뜻한다. 이들은 토착 세력과 융합하며 문화적 혼합을 이루었고, 이는 정치적으로도 보다 응집력 있는 소국 연합체를 탄생시켰다.


진한은 ‘융합’의 공간이었다.

이질적 문화들이 충돌하며 새로운 형식과 질서를 만들어냈고, 이 혼합성은 후일 사로국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진한은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정돈해 나간 가장 현대적인 삼한이었다.

점토대토기


4. 변한 – 바다와 철의 문화, 경계인의 지대


변한 은 낙동강 하류와 남해안 일대, 현재의 김해·창원·진주 등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상업과 교류의 중심지였다.

이 지역은 삼한 중 가장 이질적인 유물이 출토되는 곳으로, 팽이형 토기와 점토대토기가 함께 나타나며, 철기 유물과 외래 문화재가 다수 확인된다.


변한 은 외부와의 연결이 일상이었던 곳이다.

이들은 고조선 계통의 유물뿐만 아니라, 왜, 양쯔강 이남, 심지어 중국 화북 지방의 유물까지도 받아들였다. 중계무역을 통해 삼한 내부에 외래 문물을 전파하는 기능을 했으며, 내륙과 해안을 잇는 경계인의 삶을 살아냈다.


정치적으로는 다수의 소국들이 개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연맹체라기보다는 무역 네트워크형 느슨한 구조를 이루었다.

이곳은 후일 가야 연맹의 전신이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변한 은 ‘개방’의 공간이었다.

이질적인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품고 이어준 유연한 중심이었다.



---


5. 삼한의 형성과 시대의 연결


삼한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가졌지만, 하나의 시대를 공유했다.


마한은 지속성이었다. 오래된 것을 지키고 품은 토착의 공동체.


진한은 변화였다. 이주와 충돌을 동력으로 삼은 생존의 결과.


변한 은 연결이었다. 다른 세계를 안으로 끌어들인 문과 상업의 교차로.



삼한은 동시에 세 개의 세계였고, 하나의 시대였다.

그들이 만들어낸 구조는 단순한 부족의 연합이 아닌, 한민족의 고대적 토대였다.

우리가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이어받은 정체성은,

바로 이 지리의 질서와 유물의 증언 속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