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정통이란 무엇인가: 시작은 있지만, 계승은 없다
― 국가의 계보와 민족의 역사는 다르다 ―
이 책에서 말하는 ‘정통’이란,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어떤 국가적 구조, 정치 체계, 철학적 사유를 계승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이는 ‘민족’으로서의 한국인 전체를 나누거나,
고려·조선·고구려 등의 역사와 문화, 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신라는 고조선 이후 처음으로 자생적 통일국가로 정통의 구조를 세운 나라였고,
고려와 조선은 그 기반 위에서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만들었으며,
모두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의 중요한 토대다.
그러나 정통이란 단어는 민족적 감정이 아니라, 정치적 철학의 개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호로 '대한(韓)'을 사용하고,
그 국호는 진한-신라-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계보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정통의 계보를 진한에서 신라,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보는 것이지,
고려나 조선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계승적 실체’에 초점을 맞추는 작업이다.
이것은 역사적 정체성을 단순화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어떤 국가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자각하고,
그 흐름 속에서 한국인의 철학과 사유를 다시 묻는 작업이다.
우리는 흔히 민족의 뿌리를 말할 때 고조선을 떠올린다.
그것은 일종의 관습이자, 오래된 기억 속의 상징과도 같다.
고조선은 중국과는 다른 한민족 최초의 국가였고, 단군신화는 우리 정체성의 신화적 기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원과 정통은 다르다.
‘누가 먼저였는가’와 ‘누가 이어왔는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정통이란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부여되는 명예가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 계승의 의지와 구조, 그리고 후대 국가들이 이를 자각하고 인정하는 흐름 속에서 형성된다.
역사적 정통성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 민족적 정체성의 지속.
둘, 후속 국가의 주도적 형성.
셋, 후계 국가의 정통 자각과 계승.
넷, 문화와 언어의 연속성과 발전.
하지만 고조선은 이 조건들을 온전히 충족하지 못했다.
예맥계의 독자적 정체성은 있었으나, 위만조선 이후 내부의 이질화와 외부의 압력 속에서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붕괴는 스스로의 주도적 해체가 아닌, 외부 침략에 의한 급작스러운 붕괴였다.
그 이후 등장한 삼한이나 신라, 그 어떤 국가도 자신을 고조선의 정통 후계라 자처하지 않았다.
문화의 단편은 남았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제도적·언어적으로는 단절된 흐름이었다.
고조선은 위대한 시작이었지만, 정통의 계승은 아니었다.
시작은 신화로 기억되었고, 기억은 상징이 되었지만
정통은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끊기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필요로 한다.
고조선은 한민족의 기억 속에 남았을지언정,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정통의 흐름에서는 분절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계승의 흐름을, 고조선의 붕괴 이후 새로운 융합의 땅,
바로 진한(辰韓)에서 찾아야 한다.
그곳은 흩어진 민족의 기억이 다시 모이고, 문화가 축적되고, 언어가 자라난 공간이었다.
계승의 의지를 품은 공동체가, 정통의 불씨를 지핀 시공간.
사로국은 그 진한의 심장에서 태어났고,
그 불씨는 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고조선은 시작이었지만,
정통은 계승이다.
그리고 그 계승은,
진한(辰韓)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