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는 몰라도 장면은 안 잊히는” 지브리의 비밀

지브리와 동시대인 우리

by 서도운

지브리와 동시대인 우리


요즘, 챗GPT로 지브리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신기한 건, 그 그림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아주 어리거나, 아주 어른이라는 게 아니다.

10대부터 30대, 40대, 그 이상까지.

세대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지브리라는 이름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선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마음 어딘가에 살아 있는 장면들처럼.


도대체 지브리는 무엇이기에 이렇게도 많은 사람의 감성을 흔드는 걸까.

우리는 누구나 지브리 영화 한 편쯤은 본 기억이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어릴 적, 여름방학 낮잠 끝에 티브이를 틀었을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았을 때,

혹은 초등학교 시청각실에서 커다란 티브이로 단체 관람을 했을 때.

지브리는 어느 틈에인가 우리 안으로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센과 치히로의 이야기는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나지만,

토토로나 하울의 이야기 전체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장면은 기억난다. 표정도, 음악도, 공기 같은 배경도 남아 있다.

하지만 줄거리는 흐릿하다.


그건 지브리가 ‘스토리’보다 ‘감성’을 먼저 이야기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지브리가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분명하다.


몽환적이면서도 몽글몽글하고, 통통 튀는 듯한 끌리는 음악.

따스하지만 채도가 낮아 눈에 포근하게 안기는 화풍.

그림책 같으면서도 오래된 필름카메라 같은 질감.


아이들은 동그랗고 귀엽게 그려져 순수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어른들은 성격을 반영하듯 과장되게 표현되어

더욱더 현실에 존재하는 판타지 동화처럼 다가온다.


반면에 스토리는 그러한 감성과 이미지를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즉 스토리보다 그로 인한 여운, 그 속에 숨어있는 깊은 메시지가 더 기억이 나는 것이다.


지브리는 사건이 아닌 공기를 기억하게 만든다.

OST 한 소절이 문득 마음속을 건드리고,

눈빛 하나에, 초록빛 바람에, 그 시절 감정이 살아난다.


나는 디지몬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애틋하게 울리는 음악,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는 슬픔과 따뜻함.

그 감성은 지브리와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바로, 어른이 된 우리가 여전히 그 시절을 사랑하는 이유.


지브리는 우리의 감각 안에 살아 있다.

그 감성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AI 이미지 속에서도, 팬아트와 창작 속에서도

그 기억은 다시 살아난다.


이 평론은, 그 ‘기억의 감성’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지브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잊지 못할 세계가 되었는지를 되짚는 이야기다.

분석이 아닌 감정으로, 이성과 논리가 아닌 추억과 감성으로.

당신이 오래전 마음에 품었던 그 장면처럼,

이 이야기도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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