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

《정류장에는 토토로가 있었다》

by 서도운

프롤로그


우리가 지브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둥글고, 포근하고, 조용한 무언가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토토로가 있었다.


이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보다,

그림책을 넘기듯 펼쳐지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골집의 삐걱이는 마루,

풀숲을 달리는 아이의 뒷모습,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가는 까만 요정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눈에는 거대한 짐승도,

하늘을 나는 고양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토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우리는 그 존재를 믿었던 때를 기억한다.


그 여름의 숲,

그 비 오는 정류장,

그 따뜻하고 조용했던 시간의 감정.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으로 남는 영화.

그게 바로 토토로다.


1장. 아이만이 볼 수 있는 존재, 토토로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땐,

토끼인가? 곰인가? 잘 모르겠는 커다란 무언가가

숲 속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메이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고,

숨소리처럼 부드러운 털 위에 쓰러지듯 잠든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처럼.


아이들은 경계하지 않는다.

거대한 것도, 낯선 것도, 말 없는 존재도.

그들의 마음엔 그런 걸 막는 문이 없다.

그래서 토토로는 아이에게만 보인다.


토토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건 동심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세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도 분명 뭔가를 봤었다.


풀숲이 흔들릴 때,

커튼 틈 사이로 햇살이 깜빡일 때,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눈이 커졌던 순간.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 감정만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토토로는 바로 그 감정의 형상일지도 모른다.


2장. 비 오는 정류장, 그리고 날아오른 밤


비가 조용히 내리던 밤이었다.

사츠키는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말없이,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토토로가 섰다.

말도 없고, 눈빛도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 밤은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아이에게 세상은 설명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누군가는 올 거라는 믿음.

그리고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밤.


잠시 뒤,

눈이 반짝이는 고양이버스가 도착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속삭이듯 바뀐다.


토토로의 등에 올라타는 순간,

세상은 공중으로 떠오른다.

통통거리는 멜로디,

둥글고 둥글고 또 둥근 음표들,

그리고 바람을 가르는 밤의 숨결.


아이의 마음속에서만 가능한 비행.

동심이라는 연료로 날아오르는 밤.


그때, 우리는 날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과 함께.


3장. 고양이버스가 데려다준 곳


고양이버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원한 곳으로 간다.

정해진 길은 없고,

신호등도, 표지판도 없다.


길은 늘 있었던 것처럼 열리고,

숲을 가르고, 전깃줄 위를 달리고,

구름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누가 타도,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마음 하나만 있다면.


메이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가고 싶어.”

그 말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양이버스는 알았다.

그리고 데려다줬다.


그건 아주 오래전,

우리가 잃어버린 믿음 같은 것이다.


고양이버스는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길을 달린다.

아무도 알 수 없는,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 길을 따라.


4장. 그리고 그 여름은 아직 거기 있다


지금 다시 토토로를 보면,

그 여름은 아주 오래된 풍경처럼 떠오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했다.

“어른의 10년은, 아이의 하루와 같다.”


그 말은 토토로의 모든 장면에 스며 있다.

아이의 하루는,

참 길고 진하고 또렷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하루를 10년처럼 잃고 있다.

일에 쫓기고, 시간에 밀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당신은 오늘,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 있나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존재와

같이 서 있어 본 적 있나요?


혹은—

그때처럼,

단 한 번이라도

날아오르고 싶은 마음이 든 적 있나요?


우리가 잊고 지낸 마음들은

여전히 거기 있다.

숲 어딘가,

비 오는 정류장 어딘가,

고양이버스가 지나간 하늘 어딘가.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토토로가,

묵묵히 서 있다.


말없이,

그러나 아주 선명하게.



오늘 하루, 자기 전—

눈을 감고 토토로의 주제가를 들으며

치열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깐, 그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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