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선, 냄새, 그리고 사다리 없는 세계
기택, 기우, 기정.
모두 이름에 ‘기(寄)’를 공유한다.
‘기댈 기(寄)’, 즉 ‘붙어서 사는 존재’.
이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기생하는 운명을 이름에 각인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아내 충숙의 이름에는
‘충(蟲)’이 있다.
‘벌레충’, 즉 곤충이자,
영화의 제목과 맞닿은
기생충의 형상화.
그들의 이름은 사회적 위치가 아닌, 존재론적 조건을 드러낸다.
붙어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태어날 때부터 붙어야만 생존 가능한 세계에서 떨어진 자들.
영화는 중반부 이후,
‘계획’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사업 계획, 인생 계획,
기택의 철학적 체념.
“계획이 없으면 실패도 없다.”는 말은
이 세계의 구조에서
계획은 상류층의 언어일 뿐임을 말한다.
계획은
실행 이전에 꺾인다.
기정은 찔렸고,
기택은 실종되었으며,
기우의 집 구매 계획은
그저 반지하에서의 꿈이었다.
기생충은 냄새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계급의 선’을 드러낸다.
박사장은 말한다.
“그 냄새가 선을 넘는다니까?”
그 ‘선’은
행동의 선, 감정의 선이 아닌,
존재의 선이었다.
냄새는 지울 수 없다.
몸에서 나는 게 아니라
삶의 구조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지하의 곰팡이, 습기,
그리움이 아니라 굴욕에서 나는 냄새.
그것은
상류층이 굳이 인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구별되는 냄새였다.
위와 아래,
계단과 지하.
수평적 교류가 불가능한 세계에서
영화는 모든 위계 구조를 수직적으로 표현한다.
박사장의 집은 언덕 위,
기택의 집은 골목 아래,
근세는 그 아래의 지하.
비는 모두에게 내렸지만
잠기는 건 언제나 아래였다.
이 구조에서
상류층은 물에 젖지 않고,
하층민은 익사한다.
이 간단한 기상 변화조차
신의 편에 선 건 누구인지를 증명해 준다.
영화는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폭력을 연출하고,
잔혹함을 슬로모션으로 잡아낸다.
그 우아함은
비극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다.
고상한 파티, 축제의 와중
기정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기택이 칼을 든다.
그 모든 장면은
아름답고 천천히 흐르지만,
그 안에 담긴 건
계층 구조의 파열음이다.
문광의 등장은
영화의 톤을 뒤바꾼다.
처음엔 위장 취업극,
다음엔 가면극.
그러나 문광이 비밀의 문을 여는 순간,
블랙코미디는 지독한 현실로 바뀐다.
지하에 남겨진 남편,
그가 살아온 4년.
기택 가족이 덜고 있던 허구는
그 순간부터 덜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이 지점부터 영화는
웃을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는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계층은 타고나는 것이며, 그 벽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그들이 아무리 능력을 가져도
사회 구조는
그걸 드러낼 무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다들 ‘꽤나 실력자들’이다.
기정은 디자이너로서,
기우는 교사로서,
충숙은 가사노동자로서,
충분히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배경'이 없기에,
그 모든 실력은
한순간에 위조된 자격으로 치환된다.
그들은
계획을 세워도 무용하고,
냄새는 숨길 수 없으며,
사다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기생충은 “계급 없는 세계는 환상”임을 말한다.
그 환상조차
반지하에서 꾸는 꿈이며,
그 꿈은 오직
한 번도 빛을 가득 받아본 적 없는
지하에서만 존재한다.
『기생충』은 경계의 영화다.
그어지는 선,
사라지지 않는 냄새,
올라갈 수 없는 계단을 그리며
끝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 붙어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것이,
당신 탓입니까?
낭만 따윈 없는 지독한 자본주의 현실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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