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운의 시네마틱 레버리 [기생충(5)]

무계획이라는 계획 – 파국의 예고된 축제

by 서도운

7. 무계획이라는 계획 – 파국의 예고된 축제


밤새 물에 잠겼던 집.

기택 가족은 이제 이재민 센터에 도착해 있다.

거대한 체육관,

덜 마른 옷가지들,

텀블러에서 나오는 김 서린 컵라면.

잠든 사람들과, 자는 척하는 사람들.

전쟁터도, 피난처도 아닌 그 어중간한 공간에서

그들은 묵묵히 누워 있었다.


기우는 묻는다.

“아버지, 그 계획이 뭐예요?”

기택은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다.

계획이 있으면 실패도 있어.

계획이 없으면 실패도 없어.”

그건 체념이 아니라,

살기 위한 철학이자,

버티기 위한 자기 암시였다.


기우의 품엔 수석이 들려 있었다.

흙탕물 속에서 다시 건져낸 그 돌.

기우는 그걸 내려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 돌이,

자신의 운명을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폭우가 지나간 다음 날,

박사장네 집엔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정원은 햇살에 반짝이고,

연교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말한다.

“오늘 날씨 너무 좋다.

어제 비 온 게 전화위복이네.”

그러면서 말끔한 마당을 바라보며,

생일 파티 준비를 시작한다.


그곳엔 기택 가족이 또 있었다.

충숙은 음식을 나르고,

기정은 의상을 챙긴다.

기택은 운전사로 복귀해

짐을 나르고, 지시에 응한다.


연교는 지인들과 통화도중 기택의 냄새에 얼굴을 찡그린다.

그리곤 창문을 벌컥 연다.

기택의 표정은 굳는다.

그건 또다시 ‘그 말’이었다.

이번엔 표현이 달랐지만,

핵심은 같다.


정원에서는 웃음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살구빛 햇살 아래,

와인잔이 부딪히고,

샌드위치가 쌓인다.

상류층의 파티는 따뜻하고, 화목하고, 여유롭다.

그러나 그 경계 너머의 이들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기생하고 있다.


기우는 다혜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그는 지금 다혜에게는 관심이 없다.


“나, 이런 데 잘 어울려 보여?”


다혜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기우는 무언가 다짐하며 지하로 내려간다.


인디언 복장을 입은 박사장과 기택.

아이를 위해 준비한 작은 역할극.

그러나 기택은 이 모든 상황이 불편하다.

가면을 쓰고, 창을 들고, 소리치는 이 ‘놀이’가

그들만의 희일뿐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택은 박사장에게 말한다.

“애 많이 쓰시네요, 대표님도.

하긴 뭐, 어쩌겠어요.

사랑하는데.”

그 말엔, 자신도 같은 아버지라는 동질감이 담겨 있었고,

슬쩍 건네는 온기가 있었다.


하지만 박사장은 곧바로 선을 그었다.

“지금 우리는 비즈니스 중입니다."


그는 ‘가장’이라는 호칭을 나누지 않았다.

그는 기택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기택을 '노동력'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그간 억눌러온 모든 감정을 밀어 올렸다.

냄새, 태도, 말투, 시선, 선,

그 모든 것들이 겹쳐지며

기택의 표정에 균열이 생긴다.


이제

기생과 상류의 간극은

축제의 풍선 아래서,

서서히 팽창하고 있었다.


곧,

무언가가 터질 것이다.


제8화. 피로 그어진 선 – 끝나지 않는 지하의 꿈


기우는 수석을 들고 지하로 내려간다.
누군가는 정리되어야 했고,
이 세계는 정리되지 않으면 반복된다.
수석은 손에 묵직하다.
부를 가져다줄 상징,
그러나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은
누군가를 끝내기 위한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문광은 이미 죽어 있었다.
피로 뒤덮인 얼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몸.
그녀는 계단에서 밀린 순간부터
이 세계의 끝자락에 놓여 있었다.

기우는 멈칫했지만,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근세가 그를 덮친다.
삶의 끝에서, 마지막 발악처럼.
수석은 바닥에 굴러 떨어지고,
근세는 그 돌을 들어 기우의 머리를 내려친다.

그 순간,
기우는 상징과 함께
희망도 깨진다.

근세는 망설이지 않는다.
식칼을 손에 쥐고,
파티장으로 향한다.

기정은 파티 한가운데 있었다.
그녀가 웃는 사이,
근세는 망설임 없이 칼을 찔러 넣는다.
심장 쪽.
한 번에.

다송은 그 모습을 보고 또 쓰러진다.
그 모든 건 초대받지 않은 연극이었다.

혼란.
비명.
절규.

충숙은 근세와 몸싸움을 벌인다.
무너지는 탁자, 뒤엉키는 사람들.
그리고 꼬치.
충숙은 그것을 들어
근세의 옆구리를 찌른다.
깊게.
확실히.

근세는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그의 몸 아래
박사장의 차 키가 깔린다.
박사장은 코를 막으며 말없이 다가온다.
그는 죽어가는 근세의 얼굴을 모른다.
그는 이 지하의 남자를
그저 “냄새나는 자”로 기억할 뿐이다.

기택은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한다.
우리는
다르지 않았다.
근세나 나,
냄새로 구분되는
같은 기생자였다.

하지만 박사장은
그 ‘선’을 확실히 그었다.
그리고 그 선 너머에서
냄새를 참지 못해 얼굴을 찌푸린다.

기택은
폭발한다.
칼을 든다.
그리고
박사장을 찌른다.

그건 박사장 개인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선 아래에 놓인 자로서, 선을 긋는 세계에 대한 분노.
그저 구분된 자로 살아야 했던 존재의
최후의 저항이었다.


...


기우는 병원에서 깨어난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죽은 여동생을 떠올린다.
그리고 느낀다.
이 모든 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전혀 형사처럼 보이지 않는 형사,
의사처럼 보이지 않는 의사.
진지함은 오히려 상황을 우습게 만든다.

기택은 실종되었다.
그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다.

박사장의 가족은 이미 이사했고,
그 집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어느 날,
기우는 밤마다 점멸하는 조명을 본다.
모스 부호.
그건 아버지였다.

기택은
근세처럼
지하에 남았다.
그러나 그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살기 위해 숨었다.

박사장을 죽인 자라는 죄책감.
그리고 아직 살아야 한다는 의무.
기택은 이제
전등으로 말하고 있었다.

기우는 결심한다.
언젠가 그 집을 사서
아버지를 데려오겠다고.

그는 다시 수석을 붙잡고,
공부를 시작한다.
돈을 벌고,
출세하고,
집을 사고,
지하로 내려가
아버지를 꺼내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기택과 마주한다.
햇살이 비치는 거실,
따뜻한 식탁,
그리고 다시 만난 부자.

그러나
그 장면은 서서히 사라진다.

그건
기우가 반지하에서 꾸는 꿈일 뿐이다.

창밖엔 아직도
높고 먼 계단이 있다.
그리고 그 계단은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오르지 못할 사다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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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끝나지 않았다.
계급도, 냄새도, 선도.
우리 모두는 여전히
어디쯤에선가
기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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