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운의 시네마틱 레버리 [기생충(4)]

지하에서 왔다 – 진짜 기생의 얼굴

by 서도운

5. 지하에서 왔다 – 진짜 기생의 얼굴


문 앞엔 해고된 가정부 문광이 서 있었다.

비에 젖은 얼굴, 허술한 차림새, 어딘가 무너진 듯한 표정.

그녀는 말한다.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요.”

기택 가족은 당황한다.

충숙은 그녀의 뒤를 밟는다.

문광이 향한 곳은 박사장네 지하실.

그리고 숨겨진, 벽처럼 보이던 문.

지하실보다 더 지하에는 그 누구도 몰랐던 공간 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녀는 그 어둠 속으로 몸을 구부려 내려간다.

충숙은 따라 내려가며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한다.

그곳엔 문광의 남편, 근세가 살고 있었다.

비좁고 눅눅한 공간, 전기조차 불안정한 그 방.

그는 4년 넘게 숨어 지내며, 문광이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연명해 왔다.


근세는 말 그대로 살아만 있는 존재다.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노동도 할 수 없으며,

그저 숨 쉬고, 먹고, 기다릴 뿐.

이 집의 진짜 지하,

진짜 바닥에서 살아가는 기생.


박사장이 말했던 “2인분”의 진실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녀의 기생은 단지 생계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편이라는 더 무거운 짐을 함께 숨기는 일이었다.

그녀는 기택 가족처럼 위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로 스며들었고,

더 은밀하게, 더 철저하게 이 집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 순간,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기정.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내려다본다.

기정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고, 문광은 그들을 올려다본다.

순식간에 상황은 역전된다.

문광은 핸드폰을 꺼내 그들의 모습을 촬영한다.

그녀는 웃는다.


그들의 정체가 탄로 났다.

완벽한 위장은, 계단 하나에서 무너졌다.

문광 부부는 이 집의 거실로 올라와 박사장의 상류층 인생을 즐긴다. 문광과 기택의 가족은 그저 다를 바 없는 기생충.


기택 가족은 문광의 핸드폰을 뺏으려 들고,

기생자들이

기생자들을 밀어낸다.

자리다툼이 시작되었다.


기정은 문광을 위협하고,

기택은 핸드폰을 빼앗는다.

그러나 그 순간, 집 전화가 울린다.


그 소리는 조용하지만 선명하다.

이 집의 균열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신호.

그 누구도 완전히 주인이 될 수 없고,

그 누구도 완전히 지하에 가둘 수 없다는 경고.

위장도, 착각도, 호사도

잠시 뿐이었다.


이제 이 집에는 두 개의 지하가 생겼다.

하나는 반지하에서 올라온 자들의 위장된 삶,

다른 하나는 진짜 지하에서 깨어난 망령 같은 생존자.


기생은 지금부터,

진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6. 변기보다 아래 – 침수되는 밤의 풍경


폭우 때문에 일찍 귀가하겠다는 박사장네 가족.

이제 집은 다시 원래의 주인을 향해 열리고 있었다.


“한우 넣은 짜파구리, 부탁해요.”


박사장의 아내, 연교.

아이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간식이자,

부의 사치와 허영이 섞인 간편식.

충숙은 당황하지 않은 척, 그 재료들을 꺼낸다.

짜파게티, 너구리, 한우.


기택 가족은 문광 부부를 지하에 밀어 넣는다.

문을 닫고, 선반을 다시 세운다.

“비밀은, 땅 아래 묻었다.”

하지만 그건 묻었다기보단,

덮어두었다는 착각에 가깝다.


문광은 부상을 입은 채, 계단 아래 쓰러진다.

충숙이 발로 밀쳤다.

작고 연약한 그녀는 단 한 번의 발길질로,

더 깊은 바닥에 떨어졌다.

의식을 잃어가는 몸으로, 문광은 신음한다.


지하에 갇힌 근세는,

전등 아래 머리를 부딪친다.

불이 켜진다.

또 툭, 다시 켜진다.

그는 박사장을 향해 ‘경례’를 보낸다.

그저 빛으로, 그 존재를 알린다.

그러나 박사장은 그것을 그저 기계 결함쯤으로 여긴다.

그들의 존재는 조명보다도 아래에 있다.


기택은 지하의 냄새 속에서 조용히 묻는다.

“이런 데서도, 살면 살아지나?”

근세는 대답한다.

“바닥에서 사는 게 한둘인가.

그냥… 사는 거지.”

희망도, 계획도, 미래도 없다.

그저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게 그의 전부다.

기생이 아니라면 존재조차 할 수 없는 인생.


그리고 기택 가족은,

그들을 묻은 채,

살금살금 거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탈출구는 닫혔다.

박사장 가족은 거실에 머물고,

기택 가족은 소파 밑에 숨는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다송은 정원에서 텐트를 치고 놀고 있다.

그에게는 축제,

그러나 그 바깥의 사람들에겐 침수의 시작이었다.


박사장은 걱정한다.

“텐트에 물 안 새려나…”

그 말은, 텐트 밖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처럼 들린다.


그리고 박사장은 말한다.

“그 사람…

냄새가 좀 그래.

무말랭이 같기도 하고,

행주 삶은 물 같기도 하고…

지하철 냄새?”


연교는 웃는다.

하지만 기택은 웃지 않는다.

그 말은 가난의 냄새였고,

지워지지 않는 삶의 자취였으며,

이 집에 속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씌워진

보이지 않는 낙인이었다.


“그 냄새가…
선을 넘는단 말이야.”


그 말에 기택은 고개를 숙인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그 순간, 박사장 부부는 소파에서 누운 채

가벼운 애무를 시작한다.

성행위는 너무도 태연하다.

위에서 흔들리는 살과,

그 아래에서 숨죽이고 버티는 세 명의 가족.


기우, 기정, 기택

그들은 말없이,

그 더럽고 숨 막히는 공간에서

계속해서 내려간다.


밤은 깊고,

박사장 가족은 잠들었다.

그 틈을 타

기택 가족은 다시 집을 빠져나온다.

그들의 탈출은 성공했지만,

그 이후엔 아무 계획도 없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집은

이젠 집이 아니다.


골목은 물에 잠겼고,

비는 모든 것을 씻어 내리고 있었다.

기택의 집, 반지하는

이미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짐을 꺼낼 틈도 없다.

물은 변기에서 솟구친다.

온 세상이 오물이 되고 있다.


기정은 그 변기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은,

이젠 그 집의 변기다.

그보다 아래에 있는 삶.

그보다 더러운 현실.

그 변기조차 넘쳐흐르는 세상 속에서

그녀는 그저 담배를 피운다.

아무 말 없이.


그 밤은 모든 걸 쓸어갔다.

위장된 정체성도,

소파 밑의 꿈도,

한우가 들어간 짜파구리의 허상도.


이제 남은 건

정체를 잃은 가족과

계획 없는 삶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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