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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수발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by 스티키 노트
(제목: 개꿈 속으로)---아크릴 물감

개수발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오리.

나의 개.

순전히 귀여우려고 태어난 이 작은 육신의 미친 존재감이여.

보아라~!. 저 출중한 미모를.

또 그와 전혀 맥을 달리하는 이 개의 어메이징한 횡포의 전모를, 나는 입에 개거품을 물고 속 시원히 발설해버릴 작정이다. 그리고 그밖에 흥미진진한 '앵글'에 관해서도.


지금부터, 오늘날 내가 이 막돼먹은 녀석의 수발러가 되어 이렇듯 장황한 개수발기를 써내려가게 된 기구한 사연을 공개하고자 한다. 그에 앞서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두는것이 좋지 않을까? 이 개에 관한 모든것이 다 범상치 않다. 어찌나 유니크한 견생인지. 나를 미친듯 화나게 하고 나를 토하기 직전까지 웃게하며, 또 그와 동시에 나를 환장과 고달픔과 돌아버림의 세계로 거침없이 밀어넣는 이 크레이지한 존재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그에 맞는 각오를 다지는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굴욕적이게도 나의 오랜 은둔이 100퍼센트의 순도?를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순전히 나의 강아지 '오리' 덕분이다. 오리가 없었더라면 나는 일년에 단 한번도 저 현관문 밖 엘리베이터를 기웃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중증 공황장애(불안장애)와 성인 ADHD를 앓고 있는 은둔형 뇌질환자이다. 대인기피성향이 워낙 옹골차다보니 남편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은 나를 어떻게든 밖으로 끌어내려 호시탐탐 건수를 찾지만, 정작 나를 잠시라도 전격 출동하게 만드는 건 오리였다. 개를 키우면서 산책을 시키지 않거나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는건 학대와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오리가 나에게 온건 무려 13년 전이다. 버려지기까지의 자세한 속사정은 알수 없지만, 약 두세살 정도의 유기견 신분으로 별안간 내게 왔다. 그 당시 나의 은둔은 3년째 진행중이었으므로 전혀 개를 기를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 즈음 경기도 일대의 유기견 보호 시스템은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었고, 이렇듯 일이 뜻하지 않게 돌아가는 바람에, 느닷없이 오리를 떠안게 된것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차마 내 눈앞의 개가 안락사 되도록 내버려둘수는 없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마지못해 결정된 일이었다.


개를 기른다는 것은 터무니 없이 힘든일이다. 나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개를 기르는 집 딸로 줄곧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미혼시절, 서른이 넘도록 집에 개가 없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눈만 마주치면 지옥처럼 다퉜지만, 두분 다 개를 애지중지하는 천성을 지녔다. 99퍼센트의 증오와 1퍼센트의 동질감이 이 부부의 구성성분이었던 것이다.


간혹 주변에서 적적함을 이기지 못해 개를 기르거나, 자녀들의 호기심어린 성화로 성부르게 입양을 결정하는 분들을 보면 나로서는 우려를 금할길이 없다. 이거 재난문자라도 보내줘야 하나 싶을 정도다. 육아, 아니 육견이란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인지 몸소 일깨워주고 싶어 온몸이 다 근질거렸다. 끈질기게 쫒아다녀서라도 뜯어말리고 싶었다. 나의 은둔기질과 대인기피성향이 그 우려를 매번 이겨버리는 바람에 실제로 실행에 옮겨본적은 거의 없지만, 이 빌어먹을 천성이 가로막지만 않았어도 나는 기꺼이 도시락을 쌌을 것이다.


이제 오리가 내곁에서 열 다섯살이 되었다. 오리는 동물병원에서 건강장수견으로 불릴정도로 건강하고 팔팔하다. 나는 스물다섯까지 문제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물론 나의 호기로운 바램일 뿐이고 오리가 호락호락 협조를 해줄런지도 의문이지만, 실제로 스물다섯살이 넘도록 개를 건강하게 길러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가능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개의 이름은 '은진'이였는데 은진이는 죽기 석달전까지도 자발적으로 새끼를 낳아 무탈히 길러낼만큼 건강한 개였다. 거짓말이 아니다. (나의 이십대 시절, 은진이가 굳게 닫힌 대문사이로 도대체 무슨수로 임신을 할 수 있었는지는 앞으로 천천히 얘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족은 도시에 살았고 아빠와 엄마는 농사나 축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분들이지만, 손대는 동식물마다 '번창'하게 만드는 재능 하나는 끝내주게 타고 나셨다. 동네에서 누군가 말라 죽은 화분을 집앞에 내다놓으면, 그런 화분들을 모셔다가 기어코 집안을 정글로 만들어 놓고야 만다. 엄마 아빠의 '오기'였는지 '애정'이었는지 도무지 알길 없는 이 노익장에 관해서는 할말이 드글드글 넘쳐나지만, 프롤로그라는 오늘의 타이틀을 기억하며 일단은 이 들끓는 흥분을 가라앉혀 보기로 한다.

이불빨래 하던날. 개켜놓은 빨래가 있는곳에는 언제나 오리가 있다. 내가 방심한 사이, 어느틈엔가 저러고 있다.

이제 나의 개 오리와 우리부부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노라 맘을 먹었다. 워낙 유니크한 견생이라, 독특한 얘깃거리가 쏠쏠히 넘쳐난다. 고로, 유난견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유쾌한 마음으로 원없이 한번 떠벌려 볼 작정이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다. 고로 그림실력이 한참 달리는 나로서는 쉽지않은 여정이 될것이다.(에휴....). 실력이 달려도 이만저만 달리는게 아니다 보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싶고 암담하기 짝이 없다. 한 두주정도, 새로이 연재를 시작도 못하고 빌빌댄 이유도 다 이놈의 그림 때문이다. 한마디로 걱정이 태산이다. 그치만 어쩌겠어. 못하면 못하는대로 최선을 다해봐야지 별 수 있겠는가. 어서 연재를 시작하라고 계속 갈굼의 메시지를 보내오는 브런치 시스템의 닥달도 그렇고. 더는 못버티겠다.


우리 오리 예쁘게 봐주십사 부탁드린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늙은 오리가 얼마나 기똥찬 녀석인지 모두에게 알리고야 말겠어! 신통방통 포인트가 이토록 도처에 널려있는 개도 흔치는 않다. 천재견이라는 말이 아니다. 개웃기는 놈이라는 얘길 하고 싶은거다. 견공계의 리미티드 아이템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하자. 널리고 흔한 강아지 얘기따위, 별로 궁금하지 않다고? 에이...그러지 말고 이제 들어갑니다. 절찬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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