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그림 제목 : 사생결단 스피릿)--아크릴 물감. 여린 새끼오리의 눈빛에는 그 어떤 '결사정신' 같은것이 아로새겨 있다.
사생결단 스피릿
"기대하시라~ 절찬상영!!!"
미친 미모견 '오리'의 미친 스토리를 공개 하겠다며 책임도 못질 이따위 공수표를 날려놓고 보니, 막상 글감이 되어줄 마땅한 기억이 대번에 떠오르지를 않아 애를 먹었다...흠... 분명 할 말이 드글드글 넘쳐났었는데. 이거 설마 '멍석 증후군'?
무슨 얘기부터 들이대야 할지 솔직히 당황스럽지만, 급히 평정심을 되찾고 이 미모의 개자식이 벌인 그간의 만행을 머릿속에서 드르륵 드르륵 스크롤 해 본다. 그리고 떡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만한 글감을 우선 이것저것 골라본다.
본격적으로 얘기 보따리를 부려놓기 전에, 이 미모의 개자식 얘기만 나오면 항상 당연스레 따라 들어오는 질문이 있다. "근데 왜 하필 이름이 오리야?"
하필? 하아피일~? 뭐란 말인가. 하필이라니. 지금 이 어이없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있는 이 영혼들은 '삼시세끼' 같은 권세있는 TV프로도 본적이 없단 말인가. 아님 '세상에 이런일이' 같은 프로도? 것도 아님, 주일아침이면 어김없이 방영되는 'TV 동물농장'도?
오리는 누가봐도 빼박 '오리'를 닮았다. 그렇다. '오리 꽥꽥' 할때의 그 오리 말이다. 이 미친 미모를 자랑하는 나의 사랑스런 개자식에게, 나는 동물세계의 최고 귀요미 '오리'라는 명칭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운 오리 새끼' 라는 말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분연히 저항코자 한다. 오리새끼를 정말 본적이 있기나 하면서 그런 택도 없는 얘기를 꺼내는건지... 절대 인정할 수 없어.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를 느낀다. 모름지기 동물의 새끼들이란 하나같이 천사처럼 귀여운 법이라지만, 그중 단연코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는 동물은 바로 오. 리. 새. 끼~!. 두둥.
위의 그림을 보라. 나는 오리새끼 아니, 새끼오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럼 병아리는 어떠냐고? 거 설마 농담은 아니시겠지. 당신은 병아리들이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우다다다 뛰어다니는걸 본적이 있는가. 병아리들은 절대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뛰는법이 없다. 그저 아장대거나 아니면 좀 빨리 아장대거나, 아님 좀 더 시급히 아장대는 정도이다. 하지만 오리새끼는 그렇지 않다! 병아리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새끼오리는 어미나 형제무리를 놓칠새라, 그 짧은다리 뜀박질에 온 영혼을 냅다 갈아 넣는다. 갓 태어난 어리디 어린것이 어떻게 그런 진취적인 마인드를 원천적으로 장착하고 있을수가 있는걸까. 과장이 심하다고? 그렇담 당신은 정녕 그들의 '사생결단 뜀박질'을 단 한번도 '제대로' 목격한적이 없었던거다. 아름다워라~ 오리새끼들이여. 우싸인 볼트의 질주가 이보다 더 경이로울소냐. 병아리 따위를 갖다 붙이다니, 어찌 그런 어처구니 없는 비교를...
그것은 그저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라고 자부한다. 필사적인 몸짓인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저 작고 여린 솜털육신 어디에서 저런 결사 정신이 배어나오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무리에서 분리되는것이 곧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저 어린 생명체는 분명하게 알고 있는것이다. 누가 넌지시 뀌뜸을 해 준것도 아닐텐데 그 어린것이 어떻게 알았을까. 본능에 깊이 아로새겨진 이런 정보들은 어린 오리가 잰걸음을 걸을때마다, 보는이의 가슴이 저릿저릿하도록 자신의 존재감을 풍겨낸다. 어린것의 그 결사적인 몸짓이 우리눈엔 그토록 귀엽고 신통방통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누가 감히 '새대가리'라는 무지한 말로 이 총명의 극치를 모욕한단 말인가.
미모의 강아지 '오리'와의 첫대면에서, 내 마음이 꼼짝없이 붙들려버린 이유도 실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의 임시보호를 받고있던 그 강아지는, 처연한 눈빛과 함께 관리실 서랍장 뒤로 반쯤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어쩔줄 몰라했고 애처로울 정도로 심하게 떨고 있었다. 철없는 강아지의 흔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런데 젠장, 어쩌다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그날 그 강아지와 눈만 마주치지 않았더라도 오늘날 내가 이 고생은 면할수 있었을텐데..... 그 강아지는, 의도치않게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남겨져 버린 새끼오리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치 두려움에 가득차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는 듯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지만, 그 소심한 눈빛속에는 놀랍게도 혼신의 힘을 다한 어떤 결사정신같은것이 배어 있었다. '제발 나를 데리고 가라. 휴먼!'.
십삼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를 곰곰히 돌이켜보니, 그날은 오리가 관리사무소에서 보낸 몇일중 마지막 날이었고, 그때 오리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마지막 온힘을 다해 나를 올려다 보았던 것이다. 내가 오리에게 붙들린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누가봐도 극소심한 생명체였는데 왜 내눈에는 그런게 보였을까. 보통 강아지들이 줄줄 흘리고 다니는 똥꼬발랄 장난끼 같은것이, 놀랍게도 근석에게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공포만이 작고 마른 육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인두껍을 쓰고 차마 모른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신고하면 보호소로 데려가서 주인 찾을때까지 보호해 주겠죠?" 아파트 구내에서 유기된걸로 보인다는 사무소 직원의 말에 내가 그렇게 되물었다. "시청에 알아보니 경기도의 유기견보호소에서는 보호기간이 별도 존재하지 않고, 데려가자마자 바로 안락사라고 하더라구요" 직원의 대답이었다. 아아... 폭력의 시대였다. 그땐 그랬다.
(안락사를 담당하시는 분들께는 아무런 유감이 없습니다. 그분들의 고충과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읽은적이 있습니다. 다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스템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맙소사. 나는 이녀석에게 코가 꿰어 버렸다는것을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곧바로 직감할수 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이미 며칠 데리고 있었으니 더 이상은 보호해 줄수 없다며, 내일 오전 일찍 보호소로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오 마이 갓!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