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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미쳤지

by 스티키 노트
(제목: 아무 걱정 마)---아크릴 물감, 유성펜 여자는 낯선 개를 안고 집으로 향하며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아무 걱정 마"

파싯~!

눈이 마주친 이상, 인간적으로 그 파리한 녀석을 안락사 되도록 내버려 둘수도 없었다. 저토록 떨고있는 강아지를 사지로 보내놓고 내 남은 평생을 어찌 죄책감을 안고 절룩거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는가. ... 나라는 인간, 이 순수의 결정체 같으니.


마지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그 슬픈 눈의 개를 들쳐안고 관리사무소를 나섰다. 아오~내가 미쳤지. 하필 오늘 왜 관리사무소에 들러가지고서는.... 아주 내가 내 발등을 찍는구나. 뻔히 예견된 고달픔에, 순수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행여나 개를 찾는 사람이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서 신신당부와 함께 내 전화번호를 관리사무소에 남겨두고 나왔다. 직원의 "몇일동안 조용했던걸 보면, 그럴일은 없으실걸요 아마" 라는 대꾸에 가슴이 철렁했다. 개를 안고 관리실을 나서려는데 마침 관리실에 들어서던 어떤 주민이, 나와 오리를 보며 반색을 하는것이 아닌가. "어머머, 개가 너무 귀엽네요. 어쩜 이렇게 주인을 꼭 닮았죠?" 남의 속도 모르고 표창처럼 대뜸 날아와 꽂히는 감탄사에, 나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도처에 널려있는 이 불길한 조짐에 내 마음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이 운명의 장난에 결단코 휩쓸리지 않을것을 다짐하며 평정심을 찾아야 했다. '주인을 꼭 찾아주고 말거야!'


버려진 후 혼자서 단지를 어찌나 헤매고 돌아 다녔는지, 녀석은 꽤나 꼬질꼬질했다. 울며불며 제 주인을 찾아 헤맸겠지. 안봐도 비디오였다. 떡진 눈두덩이와 시커먼 눈물 자욱은, 녀석이 공포에 질려 홀로 치루었을 그 혼비백산의 시간에 대해 소상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게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거다 요놈아.

(제목: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아크릴 물감. 오리는 낯선 여자에게 안겨 어디론가로 움직이며 생각했다. '무서워...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에라 모르겠다. 품에 안고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녀석의 떨림이 고스란히 가슴팍에 전해왔다. 지금 이 순간이 녀석에게는, 추후의 삶이 송두리째 걸려있는 일생일대의 순간인게 분명했다. 급한 마음에 한 인간에게 구원요청의 눈길을 보내긴 했으나,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를 납치해가고 있는 이 생면부지의 인간이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니, 당연히 막연하고 공포스러웠을 터였다. 그래... 너도 복잡하겠지... 가여운 녀석.


엉뚱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었다. 낯선 개를 품에 안고 걸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그 결과 도출해낸 나의 마지막 기대. '이녀석을 맥없이 계속 떠안고 살순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인을 꼭 찾아주면 되지 뭐. 털상태로 미루어 보건데 관리받은 흔적이 살짝쿵 남아있는것이, 본시 주인이 있어서 얘를 잃어버린게 분명해. 이렇게 미모 출중한 놈을 짐짝처럼 내다버렸을리 없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실낱같은 희망에 차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발상인지를 내도록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복잡한 머리꼭지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녀석에게는 미모에 걸맞는 '오리'라는 임시보호명을 붙여주었다. 어라~너무 귀엽게 닮은것이 착붙이잖아. 금세 주인을 찾아서 보낼 개이니 만큼, 부러 이름을 위한 어떤 고민도 하지 않았고, 그저 연상되는대로 미모와 상황에 딱 걸맞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정이 들까 경계하는 마음에서였다.


맙소사. 남편은 남의 속도 모르고 눈치도 없이 반색을 하며 녀석을 물고 빨았다. 귀여워 어쩔줄을 몰라했다. 눈치를 삶아 잡순게 분명했다. 쳇. 자긴 매일 아침 출근하고 나면 개수발은 전부 내차지일텐데, 나 혼자 어떻게 감당하라는거야. 그게 어디 보통일인줄 아나보네. 몰라서 그렇지 개수발이라는게 얼마나 빡센건데 .


난 임시보호자가 되어 목이 빠져라 개주인의 연락을 기다렸다. 분명 개를 찾아 헤매이고 있을거야. 분명해! 나는 별짓 다 해가며 사방으로 온갖 수소문을 해 봤지만 끝내 아무도 오리를 찾지 않았다. 마침내 드러난 진실에 눈앞이 캄캄했다. 덧없이 사라진 기대에 적잖이 낙담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몇년째 은둔중인데.... 이대로 꼼짝없이 개어멈이 될 운명이란 말인가.


남편을 성공적으로 홀려버린 이 미모의 두살배기 미아견은, 지나가는 노인분들만 보면 유난히 더 아련한 눈을 하고 그들을 응시했다. 개가 개가 아니었다. 그들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질때까지 한번도 눈을 떼지 않았고, 사라진 이후에도 시선을 거두지 않은채 소금기둥 마냥 좀처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구슬픈 오리의 그 눈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오리가 버려진 이유를 대충 알것 같았다. 나의 상상이 틀렸기를.


그렇게 자칫 임시보호자가 영구보호자가 되려는 마당에, 몇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아무도 어린 오리를 찾지 않았다. 꼴 좋다. 임시변통으로 모든일을 대충 해결해버리려다 꼼짝없이 수렁에 빠진 꼴이었다. 나의 모든 작당이 수포로 돌아가버리자, 나 '순수의 결정체'는 남편과 함께 동물병원에 가서 정식으로 반려동물등록을 마쳤다. 내가 널 책임져줄게 죽을때까지. 그러니까 이제 걱정일랑 넣어둬 넣어둬.


생각해보니 내가 그날 아파트 마당에서 우연히 누군가가 흘린 카드키를 줍지 않았더라면, 오리를 만날일은 없었을 것이다. 주웠더라도 그 습득물을 신고하러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들르지만 않았더라면, 십년이 넘도록 이 막돼먹은 녀석의 수발러가 되어 이렇게 개 수발기를 써내려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글쎄 인연이란게 있기는 있는것 같아.

우린 그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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