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해도 괜찮아!
다음 언덕도 힘차게 넘어오실 걸로 생각하고 대야에서 기다린다. 여기가 10km 정도 되는 지점이다.
동네 아저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신다
길을 가면서 차를 타고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 있었다. 바로 갓길에 주차해 놓은 차들 덕분에 자전거로 이동이 어려웠다. 도로에 갓길을 이용하기도 보행로를 이용하기에도 애매했다.
옛날 구 길로 이동하면서 보행로가 끊긴 구간도 많았고 도로 위에 위험 요소는 넘쳐났다. IC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동할 때 더 주의가 필요했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는 자전거를 미처 보지 못할 위험도 있고 차량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자전거 전용길을 만난다.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면서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고 아버지도 곧 도착을 했다.
그런데 자전거에 핸드폰 거치대가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이것도 준비 안 했냐는 말이 목 젓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연습은 내가 아닌 아버지가 하고 있다.
자전거 도로 시작점이라 안심하고 헤어졌다. 나는 아버지 몰래 중간지점에서 기다린다.
벌써 군산에서 28km 지점이다. 이제 목적지에 2/3를 지났다. 앞으로 14km 만 가면 된다.
아버지는 2024년 대장에 게실로 두 번째 시술을 받았다. 평소에 술 끊어라, 담배 끊어라, 운동하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듣지 않더니 작년에 드디어 술은 끊으셨다.
나이 70살에 딱 한 살 모자란 69살에.
운동도 시작하셨다. 걷기부터 시작했고 식사 후에 바로 나가 야외에 있는 기구를 사용하며 운동을 했다.
그리고 자전거가 생기자 매일 5km를 시작으로 20km까지 완주를 하고 있다.
지금의 자전거는 24년 12월에 막내이모님이 줬다.
집에서 놀고 있던 자전거인데 아빠가 군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갑자기 "혹시 자전거 안 필요하세요?" 이 한마디에 자전거를 갖게 되었고 지금 타고 있다.
처음에는 5km도 타기 힘들었다. 자전거를 계속 타면서 점차 거리도 늘어나고 몸이 좋아졌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 외국 청년이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싣고 가길래 "어디를 가냐고" 물어봤다고 하셨다.
전국일주를 하고 있다는 청년의 말에 용기를 얻고 그때 아버지도 전국을 일주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꿈은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사라짐을 알기에 봄에는 꼭 하고 싶다며 늘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나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셨지만 시간이 지나도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아마 스스로가 잊고 살아가신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그렇게 서서히 잊혀 간 건지 스스로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인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꿈을 응원하고 싶었고 이번 주에 예행연습을 건의하게 되었다. 코스부터 준비물까지 아버지 스스로에게 맡겼고 난 아버지가 짜놓은 코스대로 움직이며 변수에 대비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전거부터 바꿔야 되는 건 아닌지?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갈지?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모두 아버지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현재시간 pm 12:50분 마지막 장소에서 헤어진 지 한 시간이 지나고 있다. 이 정도면 통과할 시간인데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도 없고 사람도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이 없다. 완벽한 시골에서 난 햇볕과 자연을 마주하며 응원하고 있다.
pm 13;00 멀리서 빨간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설레었다. 이제 아버지가 오나 보다. 걱정되던 마음도 서서히 녹아내리는데 빨간색 옆 검은색이 보인다.
'어디서 친구 만나서 같이 오시나?'
기대를 하며 기다리지만 가까이 다가올수록 기대는 사라졌다. 아버지와 같은 크기의 자전거가 아니다. 아버지 자전거는 소위 장 보러 갈 때 사용하는 자전거로 소형자전거다. 바퀴가 작아서 큰 바퀴 자전거를 따라잡으려면 페달을 1.5배는 더 돌려야 한다.
자전거를 전문적으로 타시는 분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쌩 하니 지나간다. 그리고 또다시 흔들리는 갈대를 벗 삼아 기다리고 기다린다.
'아무 탈 없길, 그저 안전하길 '바라고 바란다.
헤어진 지 두 시간 길을 뛰어도 마주쳤을 시간이다. 길이 엇갈린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전화를 걸어본다.
통화음이 거의 일분을 채우고서야 목소리를 듣는다.
"아빠 지금 어디쯤 가고 있어? 중간길에서 기다리는데 아직도 안 지나가서 길이 엇갈린 것 같아서 전화했어"
"잠깐만. 나 지금 익산 지나서 무슨 다리 지나가는데 삼거리 알지? 익산에서 전주 넘어가는 삼거리?"
"아빠 나 그렇게 이야기하면 모르는데 지도로 한 번 확인해 줘"
"어. 알았어 잠깐만. 춘포 1길 지나가고 있어 이제 전주월드컵 경기장까지 13km 남았다."
"오케이 그럼 월드컵 경기장에서 기다릴게. 천천히 와"
지도를 찾아보니 지금 나와는 강을 가운데 두고 아래위로 길이 갈렸다. 역시 인생 계획은 틀어지라고 있는 것 같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은 몇 년 만인지... 기억에 없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경기장 주변을 걸으면서 오늘의 할 일 기후행동 팔천 보를 채우기로 한다.
주변에 롤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어린이 놀이시설, 풋살장까지 가족들과 놀거리가 가득하다. 강아지들 노는 곳도 있는지 멍멍 짖는 소리도 들린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는 곳에 있다가 도시에 서 있으니 오만 소리가 들린다. 공사장에서 파이프 던지는 소리, 용접하는 소리, 천사들이 말하는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 차 소리 등등
고요했던 마음도 잡소리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14시 10분 집에서 출발한 지 4시간이다. 네이버 자전거 길로 검색했을 때 소요시간이 2시간 45분이었다. 벌써 한 시간이 경과했다. 만약 약속이 있거나 제한 시간이 있는 경기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오늘은 그런 문제가 전혀 없다.
안전하게 도착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14시 30분 월드컵 경기장으로 들어온 아버지가 보인다. 자랑스럽고 멋지다. 지금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게 멋지고 끝까지 완주한 사실이 자랑스럽다.
손을 들어 흔드는데도 이리저리 나를 찾고 있다.
"아빠!"
이제야 당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