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산행
잠들기 가장 안전한 곳은 도서관 앞이었다. 벽 쪽으로 이어진 ㄴ자형 의자가 뻥 뚫린 다른 곳보다 훨씬 안전해 보였다. 이미 도서관도 문 닫은 시간이라 이곳을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워 눈을 감아 봤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불편함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차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어둠을 가득 채웠고 불 켜진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모기는 오늘 잔치라도 벌어진 듯 달려들기 시작했다.
밖에 나오니 온갖 불편함 투성이다. 사람들도 가끔씩 지나면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잠은 들지 못하고 눈만 감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 봤는데 눈만 감고 잠을 청하고 있어도 수면의 효과가 70% 정도는 있다고 했다.
'무일푼'이 되면 불편함 투성이겠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불편함도 적응이 될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그리고 불편함 속에서도 편함을 찾을 것이다.
잠깐 잠들만하면 오토바이 소리가 '부아앙' 들리고
잠깐 잠들만하면 모기가 달려들었다. 몸을 뒤척이고 싶어도 좁디좁은 공간이라 몸을 움직일 틈도 없다. 침대가 아니라 소파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절로 든다.
잠을 뒤척이긴 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 불편함이 있을 뿐.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
더 불편하고
더 수고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새벽 3시까지 잠을 뒤척이다. 이후에 잠이 들었나 보다. 새벽 3시 30분에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꿀 잠 덕분에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길을 나섰다.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아침까지 잠을 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쩜 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닐까? 밖에서도 꿀잠을 잘 수가 있다니 말이다. 무일푼이 된다고 해도 잠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길은 한적했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차도 간혹 한 대가 지나갈 뿐이었다. 신호등에도 대기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검은 어둠이 동굴처럼 나를 반겼지만 조금 걷다 보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준비했던 랜턴도 날이 밝아오자 쓸모를 다했다.
처음 새벽 산행을 했을 때는 겁이 났다. 걷다가 나는 내 발자국 소리에도 놀라 기겁을 했고 낙엽이 떨어지는 바스락 소리에도 기겁을 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숲 속에서 잠자고 있던 동물들도 나 때문에 이른 시간에 강제 기상을 했다.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탓에 열이 받았는지 지랄발광을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산을 오르면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튼튼해 보이는 나무를 하나 들고 걸었다. 가끔 어두컴컴한 곳을 지날 때는 근처에 있는 나무나 돌을 탁탁 치면서 소리를 전달해 내가 있음을 동물들에게 알리곤 했다.
'내가 있으니 근처로 오지 말아라!'
'탁. 탁' 소리에 나무에서 잠자고 있던 새들이 놀라긴 해도 나의 안전을 위해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선택을 했다. 이런 나는 너무 이기적이다.
새벽 산행은 아무 생각 없이 길에만 집중을 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혹여나 길을 잃을까?! 앞만 보며 길을 걷게 된다.
잡생각은 하나도 없고 그저 길을 걷는 것만 생각한다. 가끔은 이런 게 좋다. 다른 일상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는 이 순간이 어쩜 내 삶의 위로요. 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매일 같이 이렇게 새벽 산행을 하라고 하면 어느 순간이 지나면 질릴 것이다. 잡생각도 날 것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이 있기에 가끔 이런 식에 쉼도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
까마귀에 '깍' 소리... 분명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인데 아무리 찾아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 검은 털이 어둠에서는 제대로 은폐를 해준다.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이 찾아오고
까마귀가 울면 불길한 소식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기에.
까마귀에 깍 소리는 어두운 산길에서는 더더욱 듣기가 거북했다. 살짝 발걸음에 속도를 붙여 정상을 향해간다.
정상으로 가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수지에 거주할 때 매주 주말이면 등산을 했던 덕분이다. 새벽부터 비 소식이 있어서 걱정을 했지만 비는 잠깐 한 두 방울 떨어질 뿐이었다. 가는 중간중간 산이 자체 모자이크를 한 듯 구름이 가득했다.
구름 사이를 지나면서 뭔가 좋은 기운이 내 몸에 스며드는 것 같다. 등산은 힘들지 않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평소에 운동을 조금씩 해 둔 덕분이다. 매일 운동하는 게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싶었지만 오늘 산을 오르면서 체력이 살아있음에 행복했다. 계단도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몸도 한 결 가벼웠다.
빗방울이 살포시 내린 덕분에 길은 약간 미끄러웠지만 내가 조금만 조심하면 될 일이었고 정상에 오르자 이미 날은 밝았다. 하지만 구름으로 가득한 세상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인생에서 넘어지는 순간 이런 세상이 펼쳐지지는 않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도 우린 포기하지 말고 길을 가야 한다. 넘어졌을 뿐. 삶이 다 한건 아니지 않은가!
숨을 쉬고 살아 있는 한 우린 계속 넘어질 건 뻔한 일이다. 넘어지면 일어서면 되고 넘어져서 아프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잠시 쉬어가면 된다.
정상에서는 뭐라도 먹어 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았다. 물도 없고 초콜릿도 없다. 물 한 모금이 절실했지만 마실 물은 없었다.
정상에서 잠깐 산 아래를 바라보면서 군대에서 처음 자대 배치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야 주먹 져봐. 그리고 눈에 갖다 대봐"
"네 알겠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말아 눈에 갖다 댔다.
"새끼손가락을 편다. 무엇이 보이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니 인생이다. 알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처음 이등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주먹 쥔 손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병이 되어서야 주먹 사이로 약간의 틈이 보이기 시작했고 상병, 병장이 되어서야 세상이 훤히 보였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좌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세상이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면 언젠가 훤히 보이는 그런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