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과 새벽산행
새벽 산행. 약 두 달 전부터 계획했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일상의 변화로 주말에 짬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오늘 저녁 무리하기로 결정했다.
금요일이지만 야근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9시.
'막차인 11시 차를 타고 갈까?'
망설였다. 일 마치고 헬스장까지 가면 광교에서 마지막 지하철을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운동을 하지 않고 가자니 뭔가 찝찝했다. 그래서 3킬로만 뛰고 가기로 합의 봤다.
요즘 일이 늦게 마쳐도 집에 도착하면 바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첫 바퀴는 뒤질 것 같고 두 번째 바퀴는 죽을 것 같고 세 번째 바퀴부터는 힘이 든다. 결국 다섯 바퀴가 되면 몸이 어느샌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든다. 결국 오늘도 목표치를 뛰면서 하루 동안 쌓인 노폐물이 빠지는 느낌이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 소파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운동이 망설여진다. 최대한 빨리 옷만 갈아입고 나와야 거부감이 덜한 것 같다. 매일 술을 마셨을 땐 퇴근 후 이런 일상을 꿈꾸지도 못했는데 요즘은 불편하지만 운동 시간은 꼭 지키려고 한다. 힘들지만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시간을 견디고 나면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만 같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태풍이 지나가도 천둥이 쳐도 이 순간 나를 깨울 수는 없지만 도착지 근방에 다가오자 생존?! 본능에 의해 잠이 깬다.
수원 번화가 인계동.
어두운 밤하늘이지만 이곳의 밤은 그 어떤 낮보다도 밝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모여 웃고 떠들며 금요일인 오늘을 축복하고 있다. 이 와중에 눈에 띄는 푸드트럭이 하나 있다. 상호만 봐도 무엇을 판매하는지 알 것 같다.
'그 남자의 꼬치'
왜 닭꼬치는 대부분의 상호가 남성을 상징하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사장님께 한번 물어봐야겠다.
강남역방향으로 신분당선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좌석에 앉은 사람은 한 명뿐이다. 내가 한 명을 더하고 그렇게 하나 둘 각자의 행선지를 향해 지하철에 올라탄다.
'아 졸라 춥다.'
신분당선은 1호선 전철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냉방이 너무 잘 된다. 졸라 춥다. 신분당선을 탈 때마다 너무 춥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옷을 챙기는 걸 늘 잊어버린다.
신호등 앞. 빨간 사람이 우뚝 서 있고 그 아래 거꾸로 시간이 흘러간다. 10. 9. 8. 7. 신호 대기 시간이다. 몇 초를 기다려야 니가 건널 수 있지롱 하며 놀리는 것만 같다.
'신호 대기 시간도 알아야 할 만큼 우린 바쁜 세상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멈춤의 여유를 느끼라는 배려일까?'
거꾸로 가는 신호등 대기 시간을 바라보며 신호 대기 시간 동안 내 인생도 거꾸로 돌아가길 바라본다.
하루만.
단 하루만.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그 하루는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그 하루의 시간을 로또의 대박을 생각할 수도
어제 보낸 그 사람과의 만남을 생각할 수도
우린 각자의 생각 속에 삶을 살아간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도전하기 전에 먼저 최악을 연습해 보라고 한다. 최악을 연습하다 보면 최악에 대한 두려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새로운 도전 속에 최악은 무엇일까?
'무일푼.'
사업을 시작하기 전. 누구나 꿈꾼다. 억만장자를.
하지만 타이슨의 명언처럼.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 맞기 전까지는'
그렇게 맞고 나서야 알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을 망하고 나면 무언가를 깨닫기도 하지만 그 대가도 감당해야만 한다. 아마도 '무일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오늘 새벽 산행 이유가 '무일푼'이라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일단 무일푼이 되면 집도 없다. 매일 돌아갈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 밤이 되면 어디서 자야 할까?
다행히 요즘에는 길바닥 곳곳에 의자가 있어서 예전처럼 갈 바닥에 누울 필요는 없다. 가장 안전하고 폭신한 의자가 무엇일까? 찾아보지만 고놈이 고놈이다.
의자가 가장 길고 구석에 위치한 곳으로 자리를 잡아본다.
'신발을 벗고 누울까?'
'그냥 누울까?'
잠깐 생각을 하다가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신발을 신은 채 눕기로 했다.
가방을 내리고 가방을 베개 삼아서 눈을 감아본다. 가방이 높니 낮니 투정을 부리고 집에 있는 침대가 벌써부터 그리웠다. 잠자리가 바뀌자 나는 새삼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푹신한 베개와 침대부터 바람과 비와 어둠의 위험을 막아주는 안식처까지. 뻥 뚫린 세상에 누워 있으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편안함이 없어지다니...
'무일푼'이 된다고 갑작스럽게 집에서 쫓겨나지 않겠지만 소소하게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안정된 삶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에서처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댓가도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10대도 삶이 두렵지만 40대가 되자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두렵기 시작했다.
'망하면 한 방에 훅 가는 게 아닐까?'
잘 사는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잃을까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