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꿰매는 중입니다
제16장. 우리는 아직 꿰매는 중입니다
오늘도 창문엔 부드러운 햇살이 머문다.
유리창 틈으로 들어온 빛은 실타래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다.
작은 먼지 입자들이 반짝이며 춤을 추는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조용히, 그리고 오래도록 한 사람을 바라본다.
하얀이.
그녀는 지금 고양이 자수가 놓인 천 위에, 작은 별 하나를 수놓고 있다.
이마에는 약간의 땀이 맺혀 있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다.
햇살에 살짝 물든 머리카락이 고요히 흔들리고, 그녀의 옆엔 작은 컵. 따뜻한 레몬차가 반쯤 비어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혼자 속으로 문장을 꿰맨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오래 묵은 독백처럼.
처음 이 가게를 열었을 땐, 마음속 어디에선가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저... 망가진 것들을 고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게 나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의 이면에는 고치지 못한 ‘어떤 것’이 있었고, 그걸 붙잡지 못한 나 자신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은서'
나는 여전히 네가 건넨 손수건을 보관하고 있어.
네가 울다 말고 미처 다 닦지 못한 눈물 자국도 그 자리에 있어.
너와의 이별은 예고 없이 시작되었고, 너를 잃은 날 이후로 나는 모든 것을 수선하고 싶어졌다.
찢어진 것, 끊어진 것, 멈춰선 것들까지.
하지만 실과 바늘로 꿰맬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때, 하얀이가 이 가게에 들어왔다.
작은 목소리로, 수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엔 망설였다.
이곳은 너무 조용해서, 타인의 온기가 스며드는 데 오래 걸리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마음을 꿰매는 일,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 말이 내 안에 박힌 바늘을 조금씩 풀어줬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이 공간을 환하게 밝혀주는 사람이 되었다.
하얀은 슬픔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그 슬픔을 웃음으로 덮는 데 익숙했고,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작게 말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나 같았다.
예전의 나.
아무에게도 울음을 보이지 않던, 가장 어두운 시절의 나.
그녀의 웃음 뒤에 숨겨진 조각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그러나 깊은 일이었다.
우리는 함께 고양이 자수를 놓았고,
자개장롱의 금 간 장식을 붙였으며,
노숙자가 내민 손수건을 꿰매며 그 사람의 이름을 되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알게 됐다.
‘수선’이라는 말은, 단순히 물건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수선은 ‘기억’을 이어붙이는 일이고,
‘마음’을 덧대는 작업이며,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그걸 하얀이가 가르쳐줬다.
그녀는 사라진 인형의 이름을 다시 찾았고,
앵무새가 대신 전하던 말 속에서 오래된 죄책감을 꿰맸으며,
인형극의 마지막 무대 위에 아이들의 눈물 대신 희망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따금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얀은 내가 꿰매지 못한 조각들을 대신 꿰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녀는 수선이라는 이름으로, 삶이라는 천 위에 자신만의 무늬를 놓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얀이,
나는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야.
늘 조용했고, 그렇게 지내는 게 익숙했어.
그렇지만 너를 만나고 나서, 조금씩 나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됐어.
너는 수선소를 환하게 비추는 햇살 같은 존재야.
때로는 그 밝음이 눈부셔서 눈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그 빛 덕분에 나는 지금, 내 안의 어두운 부분도 바라볼 수 있게 됐어.
고마워.
그 말이 짧아서 담을 수 없는 마음이지만,
내가 너에게 남기고 싶은 첫 번째 진심이야.
창밖의 빗방울은 어느새 그쳤다.
하얀은 조용히 수를 놓다 나를 돌아봤다.
“사장님, 무슨 생각하세요?”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냥, 좋은 생각이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실을 잡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별 하나가 완성되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수선 기록장의 한 장을 펼쳐, 펜을 꺼냈다.
[기록 39]
슬픔은 우리가 덧댄 실밥 사이에서 조금씩 가벼워진다.
기억은 꿰매어야 비로소 놓아줄 수 있고, 놓아주어야 다시 다가설 수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슬픔을 꿰매려다,
내 안의 어둠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둠 속에서도 자그맣게 웃는 빛 하나를 본다.
그 빛의 이름
하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