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차창 밖 풍경은 초겨울의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며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싸늘한 바람은 나뭇잎을 뜯어내며 사방으로 흩날렸고, 그 모습은 마치 계절이 한 해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인간의 생과 나무의 한 해가 이토록 닮아 있을까
봄이 오면 어린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여름이 되면 나뭇잎은 싱그러움을 넘어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가을이면 그 윤기를 잃고 푸석푸석한 모습을 보이고 잠시 단풍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함을 보이다 찬바람이 불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결국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엔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오빠는 오십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형제들을 만나 잠시 단풍처럼 곱고 즐거워하시더니 매서운 바람 앞에서 끝내 스러지고 말았다.
우리 오빠는 마치 나무가 마지막 잎을 내려놓듯 삶의 계절을 마무리하시고 이제는 하늘로 돌아가는 길에 오르셨다.
그 여정은 아프고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온를 향해 가시는 길이라 믿고 싶다.
오빠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중환자실의 지난 십이일, 나는 이 순간의 의미를 몸으로 겪어냈다.
길랑바레 증후군이란 병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세 달 반이라는 긴 병원 생활 동안에도 형제들은 끝까지 오빠가 회복할 줄 믿고 있었다.
그러나 , 오빠가 몸도 마음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오빠의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죄스럽고 깊이 후회스럽다.
오빠가 힘들어하던 그때,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쇼핑을 다니며 너무나도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패혈증이란 병은 잔혹했고, 중환자실의 시간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매 순간이 심장 깊은 곳을 긁어내는 고통이었다.
앉았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 "이럴 수는 없다"는 절규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울며 ,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아픔 속에서라도 기적이 찾아오길 간절히 기도했다.
혹시 오빠가 딸의 모습을 보면 눈을 뜨지 않을까, 혹시 오빠가 기적처럼 일어나 "나 물 좀 줘" 하고 평소처럼 말씀하시지 않을까,
그러한 가능성을 끝내 포기하지 못한 채 수많은 생각들이 마음속을 스쳤다.
결국 산소호흡기로도 부족해 관을 하나 더 삽입하고 딸을 기다렸다. 미국에서 오고 있는 딸에게 아빠를 한번 더 보여 주고 기적을 기다리며....
그러나 무의식 속에서도 괴로워하는 오빠의 모습을 보며 얼마 전 딸이 아빠를 만나 열흘간 함께 지내다 갔으니 그냥 편히 보내드렸어야 했다는 후회와 깊은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 그리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 앞에서는 어떤 의지나 노력도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부디 더는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이제는 편안한 곳으로 가게 해주세요" 형제들은 하루라도 빨리 오빠가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한 길로 가시기를 가슴 저미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오빠는 마지막까지 가족을 남기고 가시는 것이 마음에 놓이지 않았던지, 딸이 온 후에도 고통 속에서 우리 곁에 며칠 더 머물러 계셨다.
그 시간을 지켜보던 우리는 이별의 순간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몸으로 배웠다.
마지막 모습을 뵙게 오라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오빠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형제들이 오빠의 손과 발을 주무르고 얼굴을 어루만지니 기계 속의 혈압수치가 살짝 올라갔다.
오빠가... 우리가 온 걸 아셨을까
그 생각에 다시 가슴이 미어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오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빠, 다음 세상에 가셔서 오빠를 가장 사랑하셨던 엄마 만나 부디 행복하게 지내세요. 더 잘해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그 한 마디는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동시에 인정하는 나의 포기와 수용의 순간이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오빠와 나누었던 짧고도 깊은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고 겨울의 문턱에서, 우리는 마침내 삶의 마지막 계절을 건너 하늘나라로 오빠를 떠나보냈다.
남겨진 우리는 이별이 남기는 묵직한 무게의 아픔과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유한한가를 다시 한번 깊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생과 나무의 한 해가 닮아 있지만 , 겨울 뒤에 또 찾아오는 봄은 더 이상 우리 오빠를 이곳으로 데려오지는 못하겠지...
오빠, 하늘나라에서 오빠를 제일 사랑했던 엄마와 함께 편히 쉬세요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우리 오빠의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