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세상을 바라보는 용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보지 못할 수 있을까요?"
'까망이와 하양이'라는 그림책은 장즈루와 신친펑이 함께 쓴 그림책입니다. 같은 제목을 가진 그림책(데보라 보그릭)이 나란히 꽂혀있어 두 권을 모두 빌려왔는데, 서로 대조적인 흑과 백인 두 존재가 만나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는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하양이와 까망이로부터 시작합니다. 검은 방안에 온종일 앉아 있는 하양이, 하얀 방에 온종일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니 까망이. 창 밖으로는 눈도 내리고 낙엽이 떨어지기도 하고 환한 해가 떠오르지만 둘은 오로지 핸드폰만 봅니다. 서로를 우연히 알게 된 뒤에도 핸드폰으로만 소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만나보기로 합니다. 집돌이 친구들에게는 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까망이가 먼저 용기를 내어 하양이네 집으로 찾아갑니다. 온통 검은 세상인 하양이네 집에 들어선 까망이. 하양이는 까망이를 보지 못합니다. 바로 앞에 서있는데도 말이죠. 하양이가 까망이 집으로 갔을 때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결국 바깥세상에서 만나기로 한 까망과 하양. 초록색 들판에서 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둘은 달콤한 꽃향기를 맡기도 하고 함께 헤엄도 칩니다.
"넌 내가 보여?"
"응. 난 네 옆에 있어."
해 질 녘 깜깜한 놀이터에 앉아 서로 나누는 대화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너의 옆에 있다고 전하는 까망의 대답이 참 다정합니다.
작품 해설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내가 생존해 왔던 '안식처'는 우리의 국가, 종족, 습관, 종교뿐 아니라 마음의 벽, 편견, 맹목적인 집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은 볼 수 있지만 우리와 다른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한 동네에서 모여 살고, 자신과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생각을 공유합니다. 생각이 다른 것은 그른 것이 되고 내 편과 네 편이 나뉩니다.
아이들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향이 맞는 친구끼리 어울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겉도는 친구, 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를 이상하다고 여기고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지요. 여러 해 동안 쌓인 경험이 편견이 되어 서로를 향해 높은 벽을 쌓게 됩니다.
어른들의 세계에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세상이 견고해집니다. 각자의 세상 밖으로 나와 눈을 돌리지 않으면 영영 서로를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내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집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소셜미디어는 내가 '좋아요'를 누른 것들과 비슷한 내용만 보여주고, 뉴스는 내가 클릭한 기사와 유사한 논조의 글들만 추천합니다. 이렇게 필터를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고,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데에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흑과 백 사이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집 밖에는 초록빛 들판이 있는 힘껏 빛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색깔의 꽃들도 피고 지고 매일 해가 뜨고 집니다. 까망이와 하양이의 흑백 세상을 넘어서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가 펼쳐집니다. 나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용기, 나와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용기, 때로 불편할 수 있는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꼭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나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의 글을 편견 없이 읽어본다던지, 소설 속 인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가지 않았던 장소에 가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의 세상이 그리 넓지 않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