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나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부두

by 주아유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계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찬란한 자연과 환상적인 풍경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며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책의 모든 페이지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 같아서 내 방 벽에 걸어두고 싶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아이의 손을 잡고 푸르른 바다로 떠나고 싶은 책, 동시에 딸에게 나는 어떤 엄마인지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작은 고무배와 노를 짊어지고 집을 나서는 엄마와 아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아이는 모래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고랑을 파서 물길을 내고, 엄마에게 종알종알 말을 건넵니다. 아이의 옆에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엄마가 있습니다.



고무배를 타러 가는 아이를 엄마는 뒤따라 갑니다. 스스로 묶인 매듭을 풀고 자신만의 모험을 떠납니다. 숲을 지나 나무를 베어내는 벌목 현장도 보고, 다양한 집과 정원, 놀이공원, 정글 등 다양한 풍경을 지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나아가던 중 만난 다른 아이와 함께 놀기도 하고, 폭포를 만나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길을 떠난 순간부터 아이를 몰래 지켜보던 요정들이 물에 빠진 아이들 구해줍니다.


홀로 떠난 모험이 힘들었을까요. 아이는 깜빡 잠이 들고 맙니다. 작은 배는 아이를 데리고 유유히 흘러갑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깨어난 아이는 가장 먼저 엄마를 찾습니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엄마. 엄마는 아이의 외침을 듣고 아이를 안심시킵니다. 그렇게 서로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는 둘의 뒷모습이 참 따뜻합니다.



부두와 배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이지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부두가 있기에 배는 세상을 마음껏 누빌 수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매듭을 풀고서 홀로 모험을 떠나는 순간이 옵니다. 자신의 힘으로 매듭을 풀고 멀리 나아가려 할 때, 아이는 한 뼘 더 자라납니다. 그 순간이 오면 엄마는 엄마의 시간을 갖고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갑니다. 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섭니다. 가끔씩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조용히 기다려줍니다.


모험은 신나는 순간만으로 가득하지는 않습니다. 홀로 다니는 것이 외로울 때도 있고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물에 빠지는 순간도 있겠지요. 그때 아이의 옆에는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보호의 손길도 함께합니다. 친구를 만나고 요정이 도와줄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이의 곁을 지키는 누군가가 있기에 두려움을 이겨내고 세상을 탐험합니다. 지치고 힘든 순간이 오면 꼭 안길 엄마의 품이 있기에 단단해진 마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림책을 보며 아이가 처음으로 유치원 버스를 탔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아이는 씩씩하게 버스에 올라타 잘 갔다 오겠다며 제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새 가방을 메고 설레는 표정으로 창문 너머 작은 손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버스가 사라지고 나자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스스로 매듭을 풀고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내 품 안에서 보호받던 아이가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원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또박또박 말할 수 있을까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어느 때보다도 꼭 안아주었습니다. "오늘 하루 어땠어?" 물어보는 제게 아이는 종알종알 대답해 주었습니다. 점심시간에 나온 반찬 이야기, 선생님과 함께 한 놀이 이야기, 아침마다 러그를 깰고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옆에서 지켜 서서 놓아주는 연습이 엄마에게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꽉 붙잡고 애정을 쏟아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거리에서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엄마도 아이와 묶인 매듭을 풀어야 아이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배워갑니다.

아직도 걱정을 앞세운 참견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란 말이 서운하게 들릴 때도 있습니다. 아직도 저는 매듭을 풀고 있나 봅니다.


학교에서 보면 엄마와 아이의 매듭이 너무나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엄마가 더 괴로워하기도 하지요. 럴 때 아이는 작은 일도 커다랗게 받아들이고 두려워합니다. 아이 역시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모든 것을 엄마에게 물어보고 엄마의 세상에서만 살게 됩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항상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엄마가 원하는 답을 찾으려 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자기를 잃어갑니다. 점점 작아지고 자신감을 잃어갑니다.


그런 관계에서는 서로가 너무나 힘듭니다.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고, 아이는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기 어렵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묶인 매듭은 서로에게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어떤 말로도 풀어낼 수 없는 강한 매듭, 그 매듭을 풀어버리면 자신의 세상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더 꼭꼭 묶어버리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엄마는 두려움과 불안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이를 붙잡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이가 행동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고 믿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폭풍우를 만나더라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지칠 때 언제든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입니다.


매듭을 푸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놓아주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는 것을 그림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서로 자유로워질 때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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