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렇게

아이와 엄마의 시간

by 주아유
그렇게... 그랬는데, 이제는 이렇네.


딸이 책을 읽고선 제게 가져와서 빨리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엄마 마음이랑 똑같을 거라며 잔뜩 기대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도대체 어떻길래 내 마음 같다고 하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나란히 앉아 그렇게 책을 읽었습니다. 아, 아이의 말이 이해가 갑니다.


책 속에는 너무나 익숙한 일상의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다가도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딸도 부끄러운 듯 웃습니다. 저희 집에도 아이들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먼지 쌓인 인형들이 참 많거든요.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리다가도 막상 밥상 앞에서는 깨작거리는 아이,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잠드는 모습까지. 이 모든 장면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평범한 순간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숨어있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흐뭇해하던 엄마가, 어느새 그 장난감들이 아이에게 필요 없어져 쌓여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의 묘한 느낌. 아이와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걸으며 느끼는 공허함. 우스꽝스럽게 커다랬던 나의 옷을 함께 입을 수 있게 된 순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들. 이제는 더 이상 놀이터에서 놀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더 놀겠다고 고집부리던 작은 아이와 실랑이하던 순간들도 떠오릅니다. 작가는 섬세한 그림과 간결한 문장으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런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글이 없이 그림만으로 전달되는 페이지들도 참 좋았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나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독립을 하고, 엄마는 할머니가 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애들은 금방 큰다.",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갓난아이를 안고 고군분투하던 초보 엄마일 때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아이가 쑥쑥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니 그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내 품에 안겨 잠이 들던 아이가 이제는 혼자서 잘 준비를 합니다. 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저보다 잘하는 것들도 하나둘씩 생겨납니다. 이런 변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가기에, 그 순간순간들을 놓치고 맙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대견하고 뿌듯하면서도 그리움과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좀 더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줄걸, 좀 더 함께 놀아줄걸, 이렇게 금방 커버릴 줄 알았더라면 화내며 동동거리지 말고 좀 더 기다려줄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홀로 서가는 아이를 보내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며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여전히 힘들고 한숨이 절로 나오는 오늘의 날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요.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가는 아이의 모습도 "그렇게 그랬는데"라고 함께 웃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고 넌지시 알려줍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어른이 된 아이가 아기를 안고 다시 부모를 찾아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와 멀어지지만 결국에는 다시 부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엄마는 초보 부모가 된 아이를 애틋하면서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나의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먼 훗날 나도 같은 모습으로 서있겠지요. 그러다 서로 얼굴을 붉히며 다툴 때도 있겠지요. 그렇게 그렇게 하루를 보내겠지요.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인생을 돌아보게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뿐만 아니라, 한때 아이였던 모든 어른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나와 가족을 돌아보면서 지금 보내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아이가 자라나듯 그렇게 그렇게 우리 모두 자라납니다. 변화는 때로 아쉽고 그립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마음에 새겨둡니다. 오늘 아이들과 나눈 온기를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합니다.



"인생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가는 줄 알았더니 아니야. 그냥 때때로 겨울, 때때로 봄이었던 거 같아. 수만 날이 봄이었더라. 반짝반짝한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 너무."



책을 읽으며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 속 대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봄인 줄도 모르고 지나쳤던 나의 봄을,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나의 봄을 맘껏 만끽해야겠습니다. 태양이 환하게 머리 위로 내리쬐는 날에는 볕이 뜨거워 그늘을 찾아다니느라 반짝이는 줄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눈에 나는 환하게 빛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소중한 이와 함께 하는 기적 같은 날들을 기깔나게 맞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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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