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츠기

실패와 상처는 나만의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by 주아유

파란 찻잔을 잡으려고 수영하는 토끼의 얼굴. 그 뒤를 쫓고 있는 무채색 바다생물들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끼는 어쩌다 바닷속에서 찻잔을 손에 쥐려 애쓰고 있는 걸까요? 호기심에 빌려온 그림책에는 글이 없습니다. 하지만 글이 없기에 메시지는 더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검은 바탕에 선명한 원색으로 그려지는 생생한 그림과 킨츠기라는 생소한 금빛 단어가 주는 몽환적인 인상의 그림책을 보며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은 평화로운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토끼가 가져온 파란 찻잔, 맞은편 의자에 앉은 빨간 새, 식탁에 자라고 있는 나무 위로는 토끼가 아끼는 것들이 잔뜩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새의 색이 사라집니다. 하얗게 변한 새가 날아가면서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립니다. 토끼는 부서진 것들을 뒤로하고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갑니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덤불숲을 헤매기도 하지요. 방황끝에 토끼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깨진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기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조각들끼리 붙이면서 색다른 물건으로 재창조합니다. 금으로 이어진 도자기와 그 속에서 자라나는 나뭇잎을 보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습니다.


여기서 책의 제목인 킨츠기에 대해 알아봅시다. 킨츠기는 깨진 도자기를 옻으로 이어 붙이고, 금분으로 장식하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공예 기법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킨츠기라는 일본 전통 기법을 통해 마음속 상처와 아픔도 이어 붙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상처받고 때로는 산산이 부서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깨어진 조각들을 금으로 이어 붙일 때, 원래보다 더 아름답고 강인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상처를 감추려 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감추지 말고 인정하자고, 이를 통해 더욱 깊고 풍요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깨진 찻잔의 금빛 선들이 만들어낸 무늬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깨질지, 어떤 모양으로 깨질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그 결과물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게 됩니다. 계획된 아름다움이 아닌 예기치 못한 사고와 상처를 통해 탄생하는 진정한 아름다움. 내 삶의 크고 작은 실패와 상처들이 사실은 나만의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 낸 소중한 경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발견한 또 다른 세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킨츠기의 철학과 의미에 천착해 있는 동안 아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달라진 그림을 찾아내느라 작은 그림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디테일들을 하나씩 건져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성으로 분석하려던 것을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킨츠기라는 철학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만들어갑니다. 그림책은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또한 킨츠기의 또 다른 면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수많은 경험들과 만나 무수한 해석으로 깨져나가고, 각자의 마음속에서 금빛 실로 다시 꿰매져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재탄생하는 것. 이렇게 그림책의 힘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됩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킨츠기

책은 깨진 도자기를 복원하는 킨츠기 기법을 통해 트라우마의 통합 과정을 보여줍니다. 깨진 조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과정은, 상실을 인정하고 그 경험을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수용-전념치료(ACT)의 개념과 닿아있습니다. 또한 깨진 조각이 금으로 연결되며 새로운 전체(치유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은 트라우마 경험이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림 속 등장하는 초록 잎은 희망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어려움 속에서도 무의식적으로 희망을 찾아내는 회복 탄력성이 있다고 합니다. 어둠 속을 방황하며 다니는 모습은 상처를 직면하지 않고 도망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깨진 조각을 모아갑니다. 토끼 내면에도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조각들을 이어 붙입니다.


특히 이미지의 추성성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 해석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각자의 경험을 작품에 투사하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글은 없지만 묵직한 메세지와 즐거움을 동시에 건네준 책입니다. 킨츠기를 통해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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