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냄새

유리병에 담긴 기억

by 주아유

아이는 아빠와 함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냄새를 맡아봅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만나는 계절의 냄새는 저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섬세한 문장, 따뜻한 색감의 그림이 냄새라는 감각과 어우러져 현실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야기처럼 유리병에 순간의 냄새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주 만나뵈지 못하는 할머니의 로션 냄새, 특유의 집 냄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의 달큰한 냄새. 냄새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그때의 장면이, 그 순간의 기분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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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린 뒤 공기 중에 남아있는 흙내음, 따스하게 일렁거리는 바람의 냄새가 좋았습니다. 그 냄새를 맡으면 괜스레 가슴이 설렜습니다. 겨울동안 장롱 속에 보관된 먼지와 나프탈렌 냄새, 새 교과서의 잉크 냄새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게는 긴장되던 새학기의 냄새로 남아있습니다. 말이 없고 혼자 책만 읽던 작은 아이는 새 학기만 되면 배가 아파 조퇴를 했습니다. 자주가던 병원의 냄새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시작의 냄새는 늘 그렇듯 설렘과 불안을 품고 있습니다.


여름의 냄새는 강렬한 햇볕 같습니다. 옥수수가 김을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익어가는 냄새, 포슬포슬 감자 찌는 냄새는 할머니의 사랑이 밴 냄새였습니다. 저녁이면 피워올렸던 매캐한 모기향 연기도 떠오릅니다. 있는 힘을 다해 빛나는 초록의 냄새, 나뭇잎들이 내뿜는 진한 생명의 냄새가 참 싱그럽습니다. 바람결에 날아온 아카시아 향기도 짭짤한 바다 냄새는 아직까지 선명합니다. 해 뜨기 직전 새벽의 고요한 냄새, 이슬이 맺힌 공기의 청량함을 좋아했습니다. 선풍기 바람과 함께 뒹굴던 마루의 냄새도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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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공기의 냄새가 먼저 달라집니다. 서늘한 그 냄새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바싹 마른 빨래에 스민 햇살의 냄새는 가을이 주는 선물입니다. 바스락거리는 냄새를 맡으면 할머니께서 이불 홑청을 꿰매던 모습도 함께 떠오릅니다. 할머니 스웨터에서 나는 포근한 냄새도 기억납니다. 다시 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월이 배어든 그 향기는 어떤 것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할머니의 사랑과 세월의 무게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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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우면서 맑은 겨울의 냄새. 엄마가 끓이시던 김치찌개 냄새, 길거리에서 팔던 어묵국물 냄새도 떠오릅니다. 군고구마를 구울 때 집안에 풍기던 냄새, 찬바람을 맞으며 길가에 서서 호호 불어먹던 붕어빵 냄새가 떠올라 괜스레 허기가 집니다. 추위를 녹이는 소소한 냄새가 좋았습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냄새는 다른 감각에 비해 더 깊게 기억과 감정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추억의 냄새를 떠올리니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지금 나의 계절은 어떤 냄새와 함께 남게될까요. 먼 훗날 지금의 냄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길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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