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봐요

by 주아유

얼마 전 '그림책의 세계'라는 정진호 작가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11년차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정진호 작가님은 '위를 봐요' 를 시작으로 '3초 다이빙', '벽', '별과 나', '금손이' 등 다양한 그림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초등학생때부터 품은 건축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건축학과에 진학했지만 이건 건축이 아니라는 교수님의 피드백을 종종 받았다고 하세요. 하지만 누군가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디선가 이루어지고 있음에 쾌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졸업 전시회에서도 남들과 다르게 '평화의 댐'이라는 그림책한 권만을 제출했다고 합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거기에 나를 맞추기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추진해나가는 모습이 참 멋있었습니다.)


작가님은 한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댐, 북한의 물공격을 막아낼 댐이 필요하다는 과장 선전으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125m에 달하는 거대한 댐이 외로워 보였다고 합니다. 이 거대하고 방치된 담에게 쓸모를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댐위에 새들을 위한 탑, 댐 속을 파서 나무를 심는 상상을, 별을 감상하는 구덩이를 만드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 모든 걸 도면으로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건축학과에서 공부를 하며 건축을 이야기의 형태로 바꿔 이야기 하는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책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장애이해교육 시간이면 자주 읽어주는 책, 위를 봐요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독특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건축의 평면도에서 시작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독특한 시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인공 '수지'는 어느 날 사고로 걸을 수 없게됩니다. 수지가 할 수 있는 건 옥상에 올라가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수지가 바라보는 세상은 흑백입니다. 온통 까만 머리통만 보이는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눈 앞이 흐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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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봐요' 수지의 외침이 누군가에게 가닿은 걸까요. 아이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봅니다.

내려갈 수 없는 수지를 위해 아이는 길에 드러눕습니다. 온종일 사람들의 머리통만 보는 수지를 위해서 자기를 볼 수 있도록 누워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길을 가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주머니 한 분도 아이에게 묻습니다. 왜 길거리에 누워있냐고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아주머니께서도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수지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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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이야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바로 이 아주머니라고 하더라구요. 어린 아이들은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게 좀 더 수월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은 상대적으로 남을 위해 길바닥에 눕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아이 옆에 누워 함께해줍니다. 덕분에 길가에는 수지를 위해 바닥에 누운 이들로 가득해집니다. 흑백인 수지의 세상도 점점 색깔을 찾아갑니다. 고개를 들어 서로 눈을 마주칠 때 삶은 희망으로 차오릅니다.


우리 모두는 타인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존재 욕구 또한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내면의 수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딘가 다쳐서 꼼짝할 수 없을 때, 누군가 자신을 향해 "혼자가 아니야" 말을 건네며 손 내밀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림책은 갑작스런 장애로 세상과 단절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위로를 전합니다. 더불어 주위를 둘러보고 함께 하자는 메세지를 던집니다. 남들과 비교하면 한 없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 외로운 자책의 날들을 보내는 이들에게도 누구나 서로의 시선을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변하게 됩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고립된 마음도 스르르 녹습니다.


책을 읽어주고 수지가 바라본 흑백 세상을 인쇄해 아이들에게 나누어줬습니다. 비어있는 길을 수지에게 전달하고픈 메세지로 그려보게끔 했어요. 맨 처음 아이들처럼 드러누워 수지를 바라볼거라고 한 어린이도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혼자가 아니야"라고 몸으로 메세지를 표현한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세상이 알록달록 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이들은 무지개와 예쁜 꽃들을 그렸고, 수지가 내려올 수 있도록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 어린이도 있었어요. 내려와서 같이 놀자, 내가 도와줄께라는 따뜻한 피켓을 든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참 다정한 어린이들 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라났을 겁니다. 소외된 이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활동은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는 밑거름이 될거에요.


공간과 관계에 대한 그림책을 지속적으로 출간하는 작가님만의 시선이 참 따뜻합니다. 우리 모두가 연결된 존재라는 메세지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요.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고 함께 나아가자고 말하지요. 그래서 이 글은 정진호 작가님에 대한 개인적인 팬심이 담긴 글이기도 하지요. 고립된 존재들이 서로의 마음을 나눌 때 세상은 다채로워진다는 걸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따뜻한 그럼 덕에 하루종일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저도 조금은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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