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한 통의 수박이 가르쳐준 자유

by 주아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오와 열을 맞춰 줄지어진 수박밭.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완벽한 수박밭에 빈틈 하나가 생기고 맙니다. 누군가 몰래 수박을 훔쳐간 것이지요. 앙통은 그날부터 괴롭습니다. 자랑스러웠던 수박밭의 뻥 뚫려버린 자리만 눈에 들어옵니다. 사라진 수박이 어디로 갔을지 밤낮으로 고민하며 불안해합니다. 밭을 가꾸는 것도 포기한 채 밤에도 수박밭을 지킵니다. 잠을 자도 악몽만 꿉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고양이들이 앙통의 수박밭에 들어와 밤새 이리저리 뛰어놉니다. 공중으로 솟구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수박들과 날아다니듯 점프하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듭니다. 저걸 앙통이 보면 난리가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수박 한 덩이로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난장판이 된 수박밭이라니요.


하지만 앙통의 가슴은 뻥 뚫리는 것 같이 시원합니다. 길고양이들이 마구 엉클어 놓은 수박밭에는 더 이상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무 데나 여기저기 심긴 수박들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 보입니다. 앙통은 비로소 완벽에서 해방됩니다.




그림책을 보면서 앙통과 제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한 가지 문제가 생기면 제 삶이 흔들리곤 합니다. 문제에만 매몰되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밤에는 잠도 잘 자지 못합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결점들만 자꾸 눈에 들어와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완벽하지 않은 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서 즐거운 고양이들의 축제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이리저리 구르고 날아다니는 수박들. 다시 본 그 장면이 제게 묘한 쾌감을 안겨다 줍니다.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수박밭이 주는 답답함에서 벗어나 나도 '좀 엉망이면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확대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빈자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하자.'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수박의 빈자리가 계속 신경 쓰인다면 수박의 배열을 이리저리 바꿔보거나, 빈자리를 중심으로 수박을 따서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잘 익은 수박은 수확해서 이웃과 나누어 먹을 수도 있지요. 원래 판매용으로 기른 수박이라면 나머지 수박들을 더욱 정성껏 가꾸어 모조리 수확해 버려도 되지요.


하나의 문제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다른 생각이 들어올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작은 문제가 점점 커져서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지요. 앙팡의 수박밭처럼요. 앙팡에게는 고양이의 등장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자꾸만 꼬리를 무는 걱정과 생각을 단번에 끊어줄 수 있었으니까요. 완벽에 대한 집착을 털어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저도 제 삶에 그런 고양이들을 자주 초대하고 싶습니다. 질서 정연한 세계가 주는 안정감도 좋지만, 때로는 엉망인 것처럼 보여도 이리저리 뒤섞고 뛰어놀며 얻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그토록 고민하던 문제들도 고작 수박 하나의 빈자리 정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심리학적 분석

완벽주의와 실수 수용

앙통의 모습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벽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작은 실수나 결핍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앙통에게 수박 한 통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완벽함의 상징이었던 것이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모두 통제하려고 합니다. 앙통이 수박밭을 완벽하게 관리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이런 시도는 오히려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가져옵니다. 잃어버린 '하나'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건강한 수박들, 아름다운 수박밭, 그리고 자신의 노력으로 일궈낸 성과들 말이죠.


그런데 수박밭이 흐트러진 순간, 앙통은 오히려 해방감을 느낍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실수 수용(self-acceptance of imperfec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불완전함과 실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앙통은 완벽하게 정렬된 수박밭이 엉망이 되는 것을 보면서, 완벽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회복탄력성(resilience)'도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는 실패나 좌절을 경험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심리적 힘을 말합니다. 앙통은 흔들린 수박밭을 보며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의 엉망진창 수박밭은 혼돈이 아닙니다.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상징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때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결국 앙통은 '하나'를 잃었지만, 그 과정에서 더 큰 '전체'를 얻게 되었습니다. 완벽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찾은 것이죠.



게슈탈트 심리학과의 연관성

게슈탈트 심리학의 핵심 명제인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원리를 보여주는 다양한 예시를 들어볼게요.

음악을 들을 때 각각의 개별 음들은 단지 하나의 음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조화롭게 이어져 멜로디를 이루게 되면 감정을 전달하고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됩니다. 단일 음들의 합이 아닌 '음악 전체'라는 새로운 무언가가 창조되는 셈이죠.

시각 통합(Visual Closure)이라는 개념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불완전하거나 부분적으로 가려진 물체를 보고 전체를 인식하는 능력인데요. 단어의 일부 글자만 보이더라도 전체 단어를 추측하거나, 도형의 일부 선이 흐릿하거나 빠져 있어도 전체 모양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개별적인 부분들 보다는 전체적인 패턴과 맥락을 먼저 파악합니다.


앙통은 수박 한 개가 없어졌을 뿐인데 왜 그렇게 괴로워할까요? 게슈탈트 이론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뇌는 빈자리나 불완전한 부분을 발견하면, 그 부분에 과도하게 집중하게 됩니다.

마치 깨끗한 흰 벽에 작은 얼룩 하나만 있어도 그 얼룩만 계속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아요. 앙통에게는 그 하나의 빈자리가 아름다운 수박밭 전체보다 더 크게 느껴진 거죠. 심리학에서는 이를 '결손에 대한 과도한 주의집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고양이들의 축제로 인해 수박밭이 엉망진창이 되자 앙통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기존의 '완벽하게 정렬된 수박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흩어진 다양한 모습의 수박밭'이라는 새로운 전체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는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지각의 전환'입니다. 같은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죠. 앙통은 질서 정연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와 다양성에서 진정한 풍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심리 상담이나 미술 치료에서도 게슈탈트 이론을 많이 활용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나 아픔에만 매몰되어 있을 때, 상담사는 그들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지금 힘든 일 하나만 보지 말고, 당신의 전체 인생을 한번 돌아보세요. 당신에게는 이런 좋은 점들도 있고, 다른 소중한 관계들도 있잖아요."

이처럼 부분적인 결함이나 상실에만 집중하는 대신, 전체적인 맥락에서 자신을 바라보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내가 생각했던 문제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변화와 불완전함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요소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작은 결함이나 실수에 너무 매몰되지 마세요. 고작 수박 하나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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