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만나는 마음의 풍경

by 주아유

마리야 이바시키나의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섬세한 감정의 이름들을 모아 소개하는 그림책입니다. 일상에서 느끼지만 쉽게 설명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과 감정에도 이름이 붙어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말들을 몇가지 소개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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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 내리는 일


사우다드: 깊이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장소나 사물일 수도 있다. 사우다드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나게 하기보다 감정을 더욱 생생하고 날카롭게 만든다. 슬픔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슬픔은 삶의 기본값이다. 스쳐 지나갔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쪽은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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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더: 무언가를 떠나보내거나 가만히 내버려 둘 준비


러지성베이: 커다란 기쁨을 맛본 뒤에 찾아오는 텅 빈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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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브: 음악에 매료된 상태.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황홀감. 음악은 당신을 낯선 세계로 이끌고 전율을 안겨 주기도 한다. 심지어 바닥에 주저앉은 당신을 일으켜 줄 때도 있다.


사마르: 해가 저물고 나서도 한참 지난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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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상황과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명명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게다가 미묘하게 느꼈던 마음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단어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됩니다. 나 홀로 느끼는 외로움이나 슬픔, 평화로운 기쁨 같은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공통적으로 인간이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세심하게 이름 붙여온 감정들이라는 것을 그림책은 일깨워줍니다.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를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면,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습니다. 이런 공감과 위로의 단어는 회색 배경 위에 연필로 그린 듯한 차분한 그림과 은은한 색이 더해져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더불어 문화마다 가진 감정의 결들이 다르다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단어가 있고, 포르투갈은 사랑과 상실에 관한 단어가 세세한 결로 세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덴마크에서는 일상에서 얻는 소소한 기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의 중요함을 가치있게 여기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관계에 대한 단어나 '화'와 관련된 단어가 세분화되어 있듯이 말이죠.


나는 어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감정 단어들이 있지만 그것으로 명확하게 짚어낼 수 없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고 싶습니다. 마음을 섬세히 길어올리는 말들을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갓난 아이의 달큰하면서도 시큰한 냄새를 맡을 때의 충만감, 사랑에 빠지는 순간, 광활한 풍경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경이로움, 후회하고 자책하지만 내일은 좀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해보자고 다짐하는 순간, 쉬고싶은데 쉴 수 없는 불안감, 커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벅참과 아쉬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껏 부리는 여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이런 것들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으며 자신도 몰랐던 감정의 결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단어를 통해 나의 하루와 내 마음을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뭐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모르게 숨가쁜 순간들 속에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이름 붙여줄 수 있는 여유를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정을 언어로 명명하는 순간, 나 자신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요.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테니까요.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그림책


1.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정신적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봅니다. 심리상담 과정을 들을 때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란 말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감정에 대한 단어를 말하기 보다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참 많더라구요. 그럴 경우 상담사가 설명하지 말고 느껴보라고 개입할 때도 있습니다. ~ 하셨겠다고 감정에 이름을 대신 붙여 물어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감정, 복합적이고 모호한 감정에 구체적인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독자가 자신의 마음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를 통해 감정인식 능력과 자기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2.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타인에게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정서표현능력이 대인관계에서 공감과 이해, 깊은 대화를 촉진한다고 강조합니다. 감정 어휘가 풍부해질수록 인간관계의 질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네요.


3. 감정을 명명하는 것은 정서적 거리두기와 자기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름을 붙임으로써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게 되고, 이를 통해 충동적인 행동을 줄이고 문제 상황에 침착한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4.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할 때 오히려 심리적 상처가 깊어진다고 봅니다.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자기 수용과 치유의 출발점이 되며, 이는 긍정심리학에서도 강조하는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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