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너머의 세계, 죽음을 만나는 따뜻한 방법
세상은 불공평하다지만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죽음'이지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죽음 앞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집니다. 저도 그렇고요. 키티 크라우더의 '작은 죽음이 찾아왔어요'에서는 생의 마지막을 맞은 사람들에게 작고 상냥한 죽음이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무서운 낫을 들고 있긴 하지만 그림책 속 죽음은 어린아이처럼 귀여운 얼굴로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만나면 깜짝 놀라거나 두려움에 덜덜 떨기만 합니다.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언 몸을 녹이라며 불을 피워주려고 하면 자신이 지옥에 떨어진 거라 착각을 하고 기겁을 하기도 해요. 죽음은 슬퍼집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보고 반겨주지 않으니까요.
소녀 엘즈 와이즈는 달랐습니다. "드디어 왔군요!" 환하게 웃으며 처음으로 죽음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늘 아팠던 어린 소녀는 죽음으로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죽음의 세계에 들어간 둘은 즐겁게 놀아요. 놀아본 적 없는 작은 죽음에게 재미있는 놀이를 알려주고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요. 사실 죽음도 어린아이였거든요. 엘스와이즈와 함께 놀고 있을 때는 장면의 윤곽선이 주황빛으로 빛납니다. 다정하고 따뜻한 죽음입니다. 무섭고 두렵지 않은 죽음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엘스 와이즈는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처음으로 사귄 친구와 이별을 해야만 했지요. 엘즈와이즈가 없는 죽음은 너무 외롭습니다. 이제껏 사람들이 왜 자신을 보고서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는지 조금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엘즈 와이즈가 다시 죽음에게 다가옵니다. 죽음과 함께 있기 위해 천사가 되기로 결심한 엘즈 와이즈. 둘은 손을 잡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천사와 함께 있는 죽음을 본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께 다가올 죽음도 이렇게 다정한 모습이길 바라게 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고통 없이 아름다운 순간들로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세계를 누비고 다니진 못하셨지만 하늘나라 곳곳을 여행하듯 즐겁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죽음이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애니메이션 '코코'를 볼 때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 위안이 되었거든요. 종교를 가진 분들은 하나님과 함께할 천국에서의 삶을 기대하거나, 극락왕생하여 죽음 후 고통 없이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고 믿고 계시지요. 환생을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요. 어떤 모습을 한 죽음이든 간에 고통 없이 편안한 세계에서 원하는 만큼 누리다 소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맞닿아 있지만 우리는 죽음이 없는 듯 생활합니다. 내게는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하루를 보냅니다.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기에 삶의 한구석으로 치워버립니다. 옛날에는 동네에서 함께 모여 장례를 치르고, 고인을 애도하는 과정을 거쳐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슬픔과 기억을 공유하며 상실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갔지요. 이런 의식과 애도의 과정은 죽음을 삶의 일부분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함께 나누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죽음이 병원의 구석진 작은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치뤄집니다. 죽음은 점점 사회에서 격리되고 있습니다. 공동체적 경험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으로,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마주하는 대신 피하거나 외면해 버리고, 이로 인해 죽음은 오히려 더욱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은 커져만 갑니다.
이 그림책은 바로 이 점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합니다. 독자에게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냥하고 친절하게 보여주면서,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다가갑니다. 애도하고 기억을 나누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부드럽게 맞닿아 있을 때 삶의 소중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한층 담담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197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어린이책 작가이자 화가입니다. 선천적인 난청으로 다섯 살이 넘어서야 말문이 트였고, 이로 인해 사물의 숨은 의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책과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 난청임을 늦게 알아채셨기 때문에 주변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부족한 청각 정보를 메꿔나가야만 했다고 해요. 6살 무렵에서야 보청기를 달았지만 또래 아이들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은 그녀에게 보이는 것 너머에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을 심어줍니다. 언어적 의사소통보다 그림을 통한 표현과 소통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그림책을 통해 내면세계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밑바탕이 됩니다.
1994년 '나의 왕국'을 출간한 이후 수십 권의 어린이책을 펴냈으며, 유럽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메두사 엄마를 시작으로 그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요. 아이들의 내면과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며, 상처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 많았습니다. 삶과 죽음, 내면의 어둠과 빛, 두려움과 위로 같은 이중적인 메시지를 따뜻하고 친근한 방식으로 다루어, 어린이들이 어려운 감정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돕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