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난 작가의<집이 없어>에서 느껴지는 작은 감동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는 얼핏하면 고공행진하는 서울의 주택과 관련된 이야긴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웹툰에서 ‘집’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넘어 자신을 보호하고 생활의 기둥이 되어주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해당 작품은 이러한 ‘집’의 부재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며, 인물들의 성장을 통해 부재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인물의 성장을 통해 우리들에게 어떻게 투박한 위로를 건네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겠다.
소외된 고통을 환기시키는 캐릭터들
<집이 없어>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집의 부재를 통해 각자의 고난을 겪는다. 주인공인 고해준은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고, 백은영은 가정폭력으로 가출 청소년이 된다. 그들의 불행한 배경은 캐릭터성에 녹아 날 선 감정 표현과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들이 겪는 고난이 우리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이웃집일 수도 아랫집일 수도 있는 익숙하고도 가까운 것이라는 점이다. 독자들이 신문 한 줄로 읽고 흘려버릴지도 모르는 소외된 고통은 캐릭터들의 서사로 내밀하게 묘사되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미성숙함을 이해하고 나아가 불행한 우리 이웃들에게 따뜻한 상상력이 발휘될 계기를 얻는다.
이웃이 겪고 있을 불행 중 하나, 가정폭력은 <집이 없어>에서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뭐 하나 공감되지 않는 것이 없어 보는 독자로 하여금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집’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안전한 장소도 있으나, 그 안에서 나를 환영하는 가족이 포함된다. 그러나 <집이 없어>에는 가족과 집이 모두 있지만 집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인물들이 있다. 직접적으로 가정폭력을 겪은 ‘백은영’과 보이지 않는 가정 내부의 위계로부터 착취를 당하는 ‘김마리’, ‘엄수현’ 등이 그 사례이다. 인물들은 가족에게 품었던 기대를 모두 좌절당하고 가족에게 품은 애정은 도리어 이용당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상황은 집이 있지만 집이 없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작품은 이 아이러니를 통하여 가정폭력이 있는 곳은 집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을 통해 전하는 위로
웹툰을 보다 보면 4인용 책상에 어울리지 않는 컴퓨터 의자를 갖고 와 다섯명이 낑겨 앉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자칫 놓치기 쉬운 디테일이지만 그만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녹여내려 한 시도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웹툰은 현실의 절망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한편 만화적인 사이다 전개 없이, 현실적인 인물의 행동을 통해 갈등을 해소시킨다.
예를 들어, 오빠에게 폭력을 당하는 '김마리 에피소드'에서 원흉인 오빠를 제거하거나 벌하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리가 폭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폭력을 방관하는 아버지에게 기숙사 동의서를 받고자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심지어 마리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주변 인물로부터 오빠를 두둔하기까지 한다. 굉장히 답답할 수 있지만 약한 청소년이 했을 법한 현실적인 행동이다. 이렇게 현실적인 인물들로 만들어진 서사이기에 서로의 고통을 수용하고 보듬어 나가는 모습들은 독자로 하여금 더 큰 위로가 된다. 마치 자신의 과거를 보듯이, 암흑기의 일부를 보듯이 쉽게 투영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인물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성장했고, 이는 독자들에게 성숙한 위로처럼 다가간다. 해당 작용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댓글이다. 독자들은 인물들의 답답한 선택이 그 상황에서 최선일 수 밖에 없음을 저마다의 아픈 과거를 공유하면서밝힌다. 동시에 애틋하게 캐릭터들을 응원한다.
<집이 없어>는 흔히 웹툰에서 나오는 사이다 전개를 사용하는 웹툰이 아니다. 인물들은 현실에서 일어날법한 불행들을 겪고 미성숙한 실수들을 저지르며 그렇게 만들어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때로는 답답한 타협을 하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자극적인 재미를 주지는 않지만 몰입력 높은 묘사를 통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집에서 받은 상처, 내 편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던 순간들을 보듬어 보게 한다. 또한 화려하지 않은 그림체로 감정 묘사에 집중해서 표현한 방법은 그 일을 실제로 겪지 않은 독자들마저도 소외된 이웃을 떠올리고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갖는다. <집이 없어>는 묻어둔 청소년기의 상처를 꺼내 다시 위로해주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