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죄책감 사이의 흔들림

벗어났지만, 완전히 떠날 수 없었던 그 감정

by 라온



엄마.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 고요할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누군가의 인기척도,

숨소리도

발자국도 없는 공간.

그건 낯설었고,
조금은 무서웠고,
그리고 아주 조금,
기분이 이상할 만큼 좋았지요.


‘이제 진짜 나 혼자구나’


그 말이 두려움이 아니라
해방처럼 느껴졌던 건
아마도 오래전부터
나는 이미 혼자였기 때문일 거예요.

밥을 하다가 태우기도 했고,
혼잣말을 하다가 웃기도 했어요.
싱크대 밑에 쭈그려 앉아
바닥에 물 샌 자국을 보며,
아무도 나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실감했죠.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도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게 나였다는걸.

그 고요 속에서
내 안에 숨어 있던 진짜‘나’를 봤어요.


엄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내가
처음으로 괜찮아졌어요.

엄마도 아니고,
딸도 아니고,
사람들의 기대나 기준도 아닌,
그저 ‘나’로 머물 수 있는 시간.

그게 나를 조금씩 살게 했어요.




그런데, 엄마.

이게 '자유'라면,
왜 이렇게 미안하고 불편할까요.

엄마가 무겁게 지고 있던 삶의 일부를
어쩌면 나도 모르게 넘겨받았던 걸까요.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할수록
‘나만 편해져도 되나’

하는 마음이 자꾸 따라와요.


당신은 말했죠.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

그 말이 예언처럼 들리던 날이 있었어요.

넌 꼭 엄마처럼 살거라는, 예언.


지금 이 방 안에서
이불을 개고,

장을 보고,

퇴근 후 눕는 그 모든 순간이
당신의 삶을 따라 하고 있는 기분이 들 때.

그럴때면 더 확신이 들곤 해요.

엄마.

나는 단지,
나답게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요.

당신도
누군가의 딸이었을 거예요.
당신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독립을 꿈꿨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지금,
자유와 죄책감 사이에서
작은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당신 없이도 괜찮은 나를 만들어가면서

자유와 죄책감이 공존해도 괜찮다는 걸,
아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어요.

타인의 그림자 없이

독립된 내 공간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과 마주했던 시간.
외롭고 서툴렀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나’를 알아갔던 순간.


그곳에서,

나는 드디어 나를 찾은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