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스러움 뒤에 숨은 외로움
엄마,
나는 참 오래도록 원망했어요.
당신이 너무 차갑고,
너무 거칠고,
너무 많이 화를 내는 사람이라서.
나에게
각종 결핍을 준 사람이라서.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감정이 아니라
그저 방어였던 것 같아요.
당신은
세상이 준 모든 무게를
맨손으로 막아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단단해졌고,
그 단단함이 날마다 스스로를
찌르고 또 찔렀던 거예요.
그래서 난
최선을 다해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해요.
그 지옥같은 마음의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엄마는 종종 고개를 숙인 채
주방 싱크대 앞에
오래오래 서 있곤 했어요.
물 틀어놓고 설거지하던 그 시간이
당신의 감정표현 시간이었을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을까.
하고,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는 그때,
당신의 등을 보면서
괜히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았어요.
잘 모르겠지만
그 순간 당신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본능적인 마음이었던거 같아요.
엄마,
혹시 그때 울고 있었던 거예요?
어쩐지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아요.
당신이 그렇게 날카로웠던 건
내가 아니라 세상 때문이었다는 걸.
그 세상과 맞서 싸울 유일한 무기가
당신에겐
‘모진 말’과 ‘단단한 얼굴’뿐이었다는 걸요.
당신이 억척스러웠던 이유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는
그 절박함 때문이었단 것도.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이 기억나요.
"엄마는 무너질 틈도 없었어."
그 말,
그땐 그냥 매일 있는 푸념으로 생각했는데,
무너질 시간, 우울할 시간 조차 없이
두 딸을 먹여살리기 위해 피눈물 흘리며
애써 왔겠다, 싶어요.
엄마도 어쩌지 못했겠구나.
엄마도 사랑받고 싶었겠구나.
엄마도 외로웠겠구나.
엄마도,
그냥 한 사람일 뿐이었구나.
그걸 받아들이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외로움 속에서,
나 역시 성장하고 있었다는 걸
천천히 인정하려고 해요.
아마도 이건
'용서'라기보다
'이해'라는 단어에 더 가깝겠지요.
설령,
견디기 힘들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그 당시에 나는
그저그런 평범한 어린아이 였을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엄마,
당신의 삶이 어떤 바람 속에서 흔들렸는지
조금씩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 흔들림 속에서 지켜야 했던 게
가족이라는 이름뿐이었다면,
당신이 왜 그렇게 다그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그러다 문득
당신이 나를 향해 던졌던 수많은 말들 사이에
어쩌면 사랑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단지,
너무 서툴고, 너무 구겨져서
당신은 그 사랑을 다른 모양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 마음까지 닿기엔 아직 조금 멀지만,
나는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에요.
부디,
나의 이 마음이
나의 이 노력이
언젠가는 꼭
당신에게 닿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