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 삼켜야 했던 것들
엄마.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살았어요.
하고 싶은 말이 생겨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어도,
한 번 목구멍에서 걸러보고
"이건 말하지 않는 게 낫겠지"
하고 넘겨버렸지요.
왜냐면,
당신은 늘 내 말을 오해했거든요.
"그걸 말이라고 하니?"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니?"
"넌 늘 엄마 속을 뒤집어놓는구나."
그럴 바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의 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고,
나는 늘 조용히 피신했었죠.
슬픔도,
불만도,
억울함도.
내 마음속 작은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어요.
말을 삼키는 데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부터는 침묵이 편안해져요.
엄마.
내가 침묵을 선택한 건
순종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어요.
당신과 싸우는 건
너무너무 힘든 일이었거든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엔
당신은 너무 확신에 차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말 대신 미소를 배웠고,
말 대신 눈치를 배웠고,
말 대신 혼잣말을 배웠어요.
"이 정도쯤은 참을 수 있어."
"내가 예민한 거야."
"그냥 넘어가. 괜히 더 피곤해져."
나는 나를 설득하면서
조금씩 나를 지워갔어요.
내 감정을 말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
벌을 받는 일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나중에는 진짜 내 감정이 뭔지도
헷갈리기 시작하더라구요.
싫은 건지,
무서운 건지,
화가 나는 건지,
단지 슬픈 건지.
그 모든 감정이 목에 걸린 채,
이렇게 덜 자란 어른이 되어버렸네요.
엄마.
그거 알아요?
침묵은 때로,
가장 처절한 외침이 되기도 해요.
나는 매일 속으로 소리쳤어요.
"나 힘들어!"
"나도 말하고 싶어!"
"나 좀 봐줘!"
그런데.
당신한테는 이 절규가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니면,
다 들리면서도 안들리는 척,
이미 오래전부터
귀를 닫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엄마, 나는요.
때 묻은 감정이
지금도 종종 나를 괴롭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내 안의 창고 문을 열고 있어요.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 묵은 감정들을 꺼내어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빛을 보여 주려고 꽤 노력해요.
"정말 괜찮았니?"
"그때,
네가 참았던 그 말은 뭐였니?"
하지만.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뗄라치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된 눈물이
갑자기 머리를 들곤 했어요.
침묵을 깨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걸음마부터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나는 조금씩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비난이 아닌 공감으로,
잔소리가 아닌 토닥임으로.
엄마.
그때 내가 힘들었다는 걸,
슬펐다는 걸,
무서웠다는 걸 부정하지 않고
이제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요.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내가
나를 구할 차례니까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안쓰러운 그 시절의 나에게,
내가 너무너무 미안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선
‘엄마’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젊은 엄마의 이야기와,
그리고 ‘아빠의 부재’가 나에게
어떤 감정의 균열을 남겼는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누더기 옷을 벗어던지려고 시작한 글을
지켜 봐주시고, 공감해 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