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무게

by 라온



엄마,
나는 늘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어요.
당신이 힘들지 않게.

속상하지 않게.
조금이라도 덜 실망하게 하려고
내 마음을 삼키고 또 삼켰어요.


실패했지만요.


어쩌면 그게 사랑받는 방법이라고,
아주 어렸던 나는

그렇게 믿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엄마 말 잘 들어야지.”


“엄마 속 썩이면 안 돼.”


이런 말들이 나를 감쌌고,
나는 점점 더

작은 아이가 되어갔어요.
울고 싶어도 울지 않고,
말하고 싶어도 삼켰죠.
엄마가 웃으면 나도 웃었고,
엄마가 화내면 나도 나를 미워했어요.


나에게

착한 딸이 된다는 건
엄마가 주는 조건부 사랑을

지키는 일이었어요.
엄마를 힘들게 하면

나는 나쁜 아이가 되고,

엄마를 웃게 하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엄마,
나는 좋은 딸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에요.
틀려도,

넘어져도,

조금 부족해도.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존재이고 싶었는데.

당신 앞에서는 어쩐지,

늘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는

'내'가 있어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처럼.


발끝을 세우고,

숨을 죽이고,
조금이라도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혼날까 봐 겁이 났어요.

내가 한번 울면,
엄마는 열번 짜증을 냈고,
그래서 나는
슬퍼도 웃는 아이가 되었지요.


엄마,
나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칭찬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은 척했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아무리 애써도
엄마의 얼굴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어요.
웃는 날보다,
화내는 날이 훨씬 많았고요.


그리고

나는 서서히 깨달았어요.

아,
이건 내가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아무리 착한 아이가 되어도,
당신이 행복해지진 않는구나.


그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지쳤어요.
착한 척하는 게 싫어졌고,
조용히 기대를 내려놓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엄마를.

그냥 포기 해 버리려고

시동을 걸었던 것 같아요.


엄마,
사실 당신에게 묻고 싶었어요.
나는 대체 얼마나 더 '무언가'를 해야,
당신한테 사랑받을 수 있는거냐고.
내가 얼마나 더 조용해야,
당신의 관심 한번을 받을 수 있냐고.


하지만 묻지 않았어요.
묻는다는 건 기대하는 거니까,
기대 했다가 실망하는 건

더 많이 아픈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으려고 애써요.

한참전에 어른이 된 지금도 말이에요.

사람들의 기대에 갇히지 않으려고,

기대 자체를 거부하려고 해요.


이게

얼마나 슬픈일인지,

당신은 알까요?

아이에게 '우주'였던 한 세상이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다 결국엔

커다란 구멍 하나가 생겨 버렸네요.


엄마,
나는 '좋은 딸'이 아니어도
여전히 '나' 라는 걸,
이제서야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엄마가 인정하지 않아도,
사랑을 주지 않아도,
내가 나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당신과 함께한 긴 겨울 끝에
처음으로 얻어낸 진짜 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