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믿었던 모든 억압에 대하여
엄마.
당신은 기억하나요.
나는 다 기억해요.
차가운 장판 위에 앉아,
다 식은 국에 밥을 말아먹던 그 시간들.
내가 흘린 눈물보다,
흘린 국물이 더 따뜻했던 그 날들을.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왜 꼭 두 번 세 번 말하게 해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해?”
엄마의 말은 언제나,
날짜 없는 달력처럼 반복됐어요.
아무리 넘겨도 끝나지 않는 한 페이지.
나는 그 속에서 날마다 작은 죄인이 되었는데,
알고 있었나요?
엄마.
나는요.
당신의 말이 칼처럼 날아올 때마다
숨을 쉬지 않고 견뎠어요.
입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고,
고개만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빌었죠.
“제발, 날 그냥 좀 내버려 둬.”
우리 집에는,
문이 많았어요.
방문, 욕실문, 부엌문, 내 마음의 문.
그 중에서 한 번도 제대로 열린 적 없는 문은
엄마의 마음이었어요.
한 번도 들은 적 없네요.
“괜찮아, 너는 그대로도 충분해.”
대신 늘 들었죠.
“이 집에서 네가 제일 문제야.”
엄마.
당신의 눈은 언제나 날 지켜봤어요.
숙제는 했는지,
밥은 골고루 다 먹었는지,
어디선가 또 당신 자신을 부끄럽게 하진 않았는지.
한없이 날카로운 말과 함께 말이에요.
정작
딸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죠.
당신도 알고 있었을까요.
딸이 집과 학교
그 어느곳에서조차 속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숨 쉴 구멍 한조각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 걸.
엄마.
이 집은요.
사랑을 말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 곳이었어요.
감정을 숨기는 걸 예의라 배웠고,
슬픔을 삼키는 걸 책임이라 배웠거든요.
내가 울면 당신은 말했어요.
“뭘 잘했다고 울어.
나는 너보다 훨씬 힘든데.”
그래서 나는,
울음을 멈추는 법부터 배워야 했어요.
그게 어른이 되는 길인 줄 알았으니까요.
엄마.
그런데 나는
지금도 꿈에서 자주 도망쳐요.
당신의 목소리를 피해서,
부엌에 숨어 울던 열 살의 나를 데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도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가난이라는 칼날 위를 맨발로 걸어야 했던 당신.
하지만 엄마.
그 모든걸 감당하기에
아이는 너무너무 어렸고,
그 외로움이 내게 닿은 방식은
너무도 날카로웠어요.
당신의 상처는,
그대로 내 상처가 되어
나는 지금도 그 자국을 지우지 못해요.
그래서 나는 쓰고 있어요.
이 이야기를, 이 감정을,
어쩌면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아니.
그보다 먼저는
내 안의 열 살짜리 아이를 구하고 싶어서요.
엄마.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어요.
당신이 못 본 채 지나친 자리에서
말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에 품고.
그 시절을 살아내고 있는 나를
지금에서야 꺼내어 안아주려 노력 중이에요.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와,
살아내야 했던 엄마.
우리는
너무 다른 언어를 말하며,
오랫동안 같은 집에 갇혀있었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가
엄마에게 닿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건,
결국 나를 위한 말들이고,
아직도 가족이란 울타리에 갇힌 누군가에게 건네는
조용한 안부인사 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