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에서 배운 결핍과 책임
엄마.
아빠의 존재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게 아니에요.
조용히, 아주 천천히,
우리 집에서
그리고 내 삶에서
'빠져나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엔 식탁,
그 다음엔 지갑,
나중엔 엄마의 분에 못이긴 목소리.
점점 그의 흔적은 줄어들었고
어느새 '아빠'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 집 공기에서 사라졌지요.
엄마.
당신은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등을 곧게 세웠고,
사랑 대신 생존을 선택했어요.
반면.
나는 여전히 아이였지만,
아이로 있을 수 없었고요.
아빠가 빠져나간 자리만큼
내가 자라야 했으니까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혼자 밥을 데우고,
TV 리모컨보다
전기세 고지서를 먼저 챙기던 날들.
몸이 약해 하루가 멀다하고
보건실 신세를 졌지만,
엄마한텐 제발 전화하지 말아달라며
선생님께 울고 떼쓰던 지난 날들.
나는 어쩔 수 없이
누가 나를 안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내가 울면,
엄마가 몇배로 울까봐 참아야 했고,
스스로가 못버티고 무너질까 봐
말할 수 없었어요.
그리운게 아니에요.
어차피 집에 있을때에도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으니까요.
아니.
정작 중요할 때 마다 곁에 없는 그가
오히려 미웠다는 말이 맞겠네요.
그러나
아빠가 없는 집은,
단지 사람이 없는 집이 아니라
마음 둘 곳이 없는 집이었어요.
나는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
벽처럼 버티며 자랐지요.
한 번은,
학교에서 친구가 아빠 이야기를 꺼냈어요.
"우리 아빠가 데리러 왔어. 가봐야 해."
그 말을 들으며,
자조적으로 웃었어요.
설령 가난한 가정환경 일지라도
그런 다정한 부모님이 있다는게
정말로 부럽기도 하고,
내 곁엔 한명도 없다는게
허탈하기도 했거든요.
엄마.
'그 정도'가 다정하다고 느끼는게
맞는건가요?
어른 다운 어른이 과연 있기나 할까.
삐딱한 마음이 자라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그 마음을 꾹 눌러 접어두고
다시 어른인 척을 했을 때의
그 텅 비어버린 공허한 마음을
어찌 보상 받을 수 있을까요.
역할이 혼란스러운 그 시절,
나는 누구에게도
내 진짜 나이를 보여주지 못했어요.
엄마.
나도 지금은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왜 내가 '아이'이기를 포기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을수가 없었네요.
아빠 없는 집에서
나는 자라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키웠고,
알지 않아도 되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그 쯤 어딘가엔
아직도 채 마르지 않은 결핍이
조용히 숨 쉬고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마음들이 자라
나를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준건데.
내가 너무
미워만 했나, 싶어요.
엄마.
사람들은 말해요.
'살아남은 아이'
라고.
그래서 나는,
그 결핍을 품고도 살아남은 내가
꽤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요.
엄마는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현재진행형 이잖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물음이 자꾸 마음에 맴돌아요.
아마도,
그 질문의 답을 마주하는 순간이
내가 엄마를 이해하게 될
첫 걸음이었겠지요.
이 글은,
내 안에 머물던
'누구도 듣지 않았던 어린 나'
의 목소리를 조용히 꺼내어,
앉혀두고 쓰는 기분이었어요.
결핍은 나를 힘들게 자라도록 했지만,
동시에 나를 더
단단하게도 만들어 주었네요.
다음 편에서는
엄마를 원망했던 감정 아래
숨겨져 있던 진짜 감정,
‘엄마도 어쩔 수 없었구나’라는
깨달음의 순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어쩌면 지금도 계속
가슴 한 켠이 꽉 닫혀,
응어리 져 있을 모든 분들에게 받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