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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는 내 것이 아니었다>

by 김예지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공간은 나를 반기지 않았다.


벽에는 이전 사장님의 손길이 남아 있었고,
찬장 속엔 낯선 취향의 잔들이 정리되어 있었으며,
커피 머신은 나보다 훨씬 오래
이 자리를 알고 있는 듯했다.


모든 게 이미 갖추어져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그 공간은 아직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남이 만든 무대에
어색하게 올라간 사람 같았다.


의욕은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 공간에
아직 머물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조명을 바꿨다.
내가 좋아하는 색의 꽃을
카운터 한쪽에 올려두었다.


잔을 닦는 손길이
조금은 조심스럽고,
조금은 애틋해졌다.


그렇게 나는
아주 천천히
이 공간에 스며들고 있었다.


하루에 하나씩 바꿔갔다.


벽엔 내가 고른 거울을 새로 걸었고,
화이트 선반 위엔 은은한 레이스 천을 조심스레 펼쳤다.

메뉴판의 글씨체를 고르고,
매장 안엔 잔잔한 팝 음악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모를 만큼 작은 변화들이
조금씩 이 공간을
‘내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가끔은 이 공간이
나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잘 맞지 않는 기계,
매출이 줄어든 날,
준비한 메뉴가 팔리지 않았던 저녁.


그럴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나’
수없이 되뇌었다.


이 공간이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열쇠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내가 이 공간을
조금 더 믿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시절을 지나며 배운 건
‘내 것’이라는 건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가게는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들고
조심스레 이 공간에 들어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이곳이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내 것이 되었다고 느낀 날은
별일 없던 어느 평일 오후였다.


햇빛이 창을 타고
천천히 바닥을 스치고 있었고,
손님은 말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나는 그 풍경 안에
어색하지 않게 섞여 있었다.


카운터 너머에서
잔을 닦던 내 손이
참 조용히 그 자리에 어울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 가게가 나를 받아준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이 공간에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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