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물여섯, 사장이 된다는 것

by 김예지

스물여섯.
생각보다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나이였다.


직장에 적응해 가는 친구들은

점점 안정되어 갔고,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은

이력서를 다듬고 있었고,
누군가는 시험 준비로 바빴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었다.
작은 카페의 조명을 켜고,

음악을 틀고, 기계를 예열했다.


원두 향이 매장 가득 퍼지는 시간,
커피를 내리고 디저트를 진열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 공간이 채워지는 기분, 그 감각이 참 좋았다.


가끔은 이런 내가 자랑스럽기도 했고,
가끔은 그 자부심보다 더 큰 외로움이 밀려왔다.


사장이 된다는 건
단순히 커피를 팔고, 자리를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매일 예고 없는 변수를 마주하고,
누군가의 하루를 책임지는 자리였다.


기계가 갑자기 멈췄을 때,
아르바이트생이 결근했을 때,
손님이 커피 맛에 불만을 토로했을 때,
심지어 오늘 매출이 어제보다 눈에 띄게 줄었을 때조차
그 모든 순간에 나 혼자였다.


결정을 내리는 것도,

감정을 정리하는 것도,
그에 따른 모든 책임도 내 몫이었다.


‘사장’이라는 단어는 처음엔 멋지게 들렸다.
내 이름으로 된 가게,
내가 만든 메뉴,
내 취향이 담긴 인테리어.
그 모든 게 나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 이름을 입어보니,
조금은 무겁고, 때론 벅찼다.
처음 몇 달간은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라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곧 깨달았다.
월말 정산서를 넘기며 한숨 쉬는 밤,
냉장고 안 유통기한을 체크하며 불안해지는 날,
매장 구석구석 먼지를 닦으며 지워지지 않는 책임감.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사장’이라는 단어의 현실을 조금씩 배워갔다.


그럼에도 이 자리를 좋아할 수 있었던 건,
커피 앞에서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계를 예열하고, 원두를 갈고,
뜨거운 물이 천천히 내려오는 그 몇 초 동안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았다.


커피 한 잔이 완성되는 순간,
내 하루도 함께 내려졌고,
그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가게는
내가 정답을 찾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니라,
답이 없어도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만든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스물여섯, 나는 아직 미완성이다.
하지만 이 가게 안에서
분명 어제보다 단단해진 나를 마주한다.


손님 앞에서 웃고,
직원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혼자 남은 밤에는 오늘의 나를 토닥인다.


커피 앞에 선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그래서 아직도 이 일을 사랑한다.


이 공간은
내 인생의 완성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가장 진심이었던 순간들이 깃든 곳이다.


그리고 이건,
스물여섯이라는 이 시기에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값진 성장의 기록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