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어머니가 된다는 건,

by 해피마망

남편이 첫 휴가를 나오고 다섯 달이 흐른 이듬해 2월,

여자는 남편 없이 첫 아이를 낳았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집안은 잔치집처럼 부산스러웠다.

영식아범과 어멈은 온 집안의 안팎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부지런히 아궁이에 불을 지피곤 했다.

시어머니는 진작에 아기 기저귀와 아기의 이부자리, 배넷저고리를 손수 만들어 작은 장에

차곡차곡 접어두고는 하릴없이 한 번씩 꺼내어 다시 기저귀의 네 귀를 맞춰 개고는 했다.

시아버지는 어쩌다 한 번씩 대청에 나와 영식아범에게 며늘아기 방에 불을 잘 넣으라고 한 마디씩 하며 집안의 동태를 살폈다.

윗마을 아랫마을에서도 아주머니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미역이며 늙은 호박이며 고기며 갖가지 먹을 것들을 놓고 가기도 했다.

모두가 여자의 출산을 기다리듯 종종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방 안에서 바라보며, 여자는 문득 남편이 없는데 아기를 낳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필요한 순간에는 정작 그가 옆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이 필요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아기를 기다리며 바쁘게 오가는 광경을 바라보니 바로 지금 같은 때에 옆에서 손을 잡아 줄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보였다.

그러나 서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누구 못지않게 아기의 출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없어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아기의 움직임을 느낄 때마다 여자는 구름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신비한 기분이었다.


결혼 첫날밤 이후 여자의 마음 한구석엔 무언가가 그녀를 잡아 흔드는 것 같은 불안한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러나 아기를 잉태한 이후로는 그런 것은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남편이 없이 혼자 잠들 때 간혹 꾸던, 첫날밤에 보았던 이상한 형상의 꿈도 더 이상 꾸지 않게 되었다.

여자는 이 모든 것이 아기 덕분이라고 믿었다.


방안은 더웠다.

2월의 겨울 끝자락 추위가 매서웠지만 방바닥은 뜨끈하니 등허리가 뜨거울 정도였다.

아랫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으며 까무룩 하게 멀어지는 정신 속에서 그녀는 남편을 만났다.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뛰듯이 다가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여자는 손을 뻗었다.

그때 '응애~'하는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렸다.

순간 여자는, 모든 것이 멈추고 온 세상이 자신과 아기만 감싸고 있는 듯했다.

마치 아기새를 품고 있는 어미새의 품속처럼 세상이 한없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딸이여, 애기 좀 봐. 아휴 고거 참 똘똘하게도 생겼네"


작은 어머니 말에 여자는 눈가가 젖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아기가,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몸은 한없이 아팠지만 눈앞이 밝아지고 정신은 생생히 살아났다.

병아리처럼 작고 보송보송한 아기가 여자의 옆에 뉘어졌다.

2월 14일, 해가 지고 난 후의 일이었다.


며칠 뒤, 남편이 잠시 휴가를 나와 아기를 처음 마주할 수 있었다.

남편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서툴게 딸아이를 품에 안고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기의 작은 손이 꿈틀거리며 남편의 손가락을 움켜쥐자, 그의 눈빛이 흔들리며 웃음을 뿜어냈다. 그의 눈가에서 반짝이는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여자는 안심했다.

"우리 애기야..." 가늘게 떨리는 낮은 목소리로 남편이 말했다.



그날 밤, 여자는 곤히 잠든 남편 곁에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창문 너머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고, 아기는 조용히 숨을 몰아쉬며 여자의 젖꼭지를 물고 있었다.

여자는 아기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니가 와 줘서 고맙다. 니가 와서 나는 평안해."


하루하루가 고단하게 흘러갔다. 밤마다 이어지는 아기의 울음, 젖을 물리면 저려오는 팔, 끊임없이 갈아줘야 하는 기저귀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날들이 지루하지 않았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 곧 여자의 하루가 되었고, 그 하루는 다시 내일을 살아낼 힘을 주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으면 남편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도, 세상의 소란도 모두 사라졌다.

아기를 키운다는 자부심이 가슴 속에 뿌리내렸고, 여자는 점점 자신이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첫아이의 탄생은 여자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열 달 동안 함께 숨 쉬던 생명이 품속에 안겨 있을 때, 그 아기를 내려다 보며 여자는 자신이 어머니가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기억했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낳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아기는 여자를 어머니로 만들었고, 어머니는 아기를 통해 다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일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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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마망의 연작 소설,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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