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엄마의 생활철학 #12

식은 팬에도 향은 남는다

by 해피마망


"엄마, 부침개 먹고 싶어~"


딸의 반가운 요청에 재빨리 시장으로 향한다.

부추 한 단을 사고, 밀가루 한 포를 사 온다.


양파와 부추를 썰어 반죽을 하고

부침개 한 장을 부쳐 딸에게 건넨다.


"아~~ 맛있어! 역시 엄마표 부침개가 최고야~"

딸의 애교 어린 말을 들으며 기분이 으쓱해진다.


부침개를 다 부치고 나면,

팬은 금세 식는다.

불을 끄고, 기름을 닦아내고, 조용히 싱크대에 놓으면

방금 전까지의 지글거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 자리에 있으면 여전히 고소한 냄새가 돈다.

기름이 조금 탔던 그 향,

밀가루와 부추가 섞인 온기가 공기 속에 남아 있다.


살면서 그런 향이 있다.

이미 끝났는데, 여전히 남아 있는 시간들.

이야기는 끝났지만 마음속엔 아직 따뜻한 문장이 남아 있는 관계들.

사람의 온도란 게 참 묘해서

멀어진 뒤에야 그 온기가 더 또렷해진다.


식은 팬을 닦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조금 더 오늘 안에 머물러야겠구나.”


나는 이제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모든 뜨거움은 식기 마련이고,

그 식음 속에서 비로소 향이 완성된다.


뜨거움은 순간이지만,

향은 오래 남는다.

인생도 그렇게 식은 뒤에야 고소해진다.






<상큼 발랄 해피마망의 인생철학>은,

매주 월, 화, 수, 금, 토요일에 발행됩니다.

평범한 일상을 한 끗 다른 시선으로

유쾌하게 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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