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나는 청각장애인입니다.

EP2)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글

by 세아


나는 청각장애인이다.


5살 때, 심한 중이염으로 청신경이 손상되어

‘청각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어렸을 땐,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귀 안에 착용한 보청기도 감추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건 내 심장이야”라고 당당히 말하곤 했다.


나는 내가 다른 줄 몰랐다.

가족과 친구들의 익숙한 목소리와 입모양 속에서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자라왔다.


그땐 몰랐다.


앞으로 내게 감당해야 할 수많은 숙제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작고 여린 마음 안에 세상을 살아갈 단단한 무언가가 자라기 시작했다.




성장과 도전


학창 시절 나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제법 단단하고 당당한 아이였다. 그러나 ‘대학 진학’과 ‘성인’ 이 다가올수록 설렘보다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커졌다.


"청각장애인인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직접 세상에 부딪혀보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을 느꼈다.


말을 놓치고, 표정을 놓치고, 분위기를 놓쳤다.

나만 늦게 웃고, 나만 다시 묻고, 나만 우울해 있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부딪히며 새로운 소리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남들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라면,

나에게는 ‘새로운 소리’가 곧 환경이다.




처음의 좌절, 또 다른 도약


처음으로 ‘승무원’이라는 꿈이 생겼을 때,

청각장애인은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좌절감을 느꼈다. 그러나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누구보다 두 세발은 먼저 앞서가야 했기에 다시 일어났다. 작은 용기를 안고 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

더 다양한 소리들 속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나의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갔다.

나는 항공사 지상직 여객서비스 일을 선택했다.


서비스업을 하며 청각장애인으로서 쉽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나는 장애에 얽매이지 않고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충실히 역할을 해냈다.


그렇게 어느새 한 직장에서 9년 차 서비스업 종사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당히 말한다.


“안녕하세요, 소통을 잘하는 청각 장애인입니다.”





깨달음과 글쓰기


30대를 맞으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청각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은 곧 나 자신인데,

나는 그것을 단순한 핸디캡으로만 여기며

평범함 속에 섞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그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 ‘청각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에 애쓰며 살아가기보다, 그것이 곧 나 자신임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은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브런치스토리 연재 <안녕, 소리야>는 나를 ‘틀 안의 삶’에서 꺼내어 진정한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의 길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나의 꿈과 조금씩 가까워지도록 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꿈


현재 연재한 지 4개월,

나의 글은 사람들에게 닿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고, 또 어떤 이는 비장애인이지만 삶의 방식에서 공감을 나눠주었다. 그 순간 나는 이제 비로소 나 자신이 되어가고 있구나 느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꿈을 주었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고,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다리가 되는 것.


그 시작의 첫 발걸음을 청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통해 새로운 출발의 발판이 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글로써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작가로 살아가고 싶다.


이제 더 이상 평범함 속에 숨지 않을 것이다.


글을 통해 진짜 나로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닿는 작은 울림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다.

keyword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