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미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by 김준한

(수필)

어미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김준한


하루를 어둠 속에 묻고 집으로 들어 서렸는데 현관 옆 바닥에 새끼 까치가 떨어져 있었다.

골목 담벼락에 걸터앉은 어미 까치의 울음이 하늘 위의 별처럼 내 가슴에 따갑게 틀어 박히기 시작했다.


새끼 까치 앞에 다가서자 세상의 일도 담지 못했을 핏덩이 같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누가 밟을까 염려되어 구석진 옆으로 옮겨 놓았다.


새끼를 오른손으로 조심히 들어 올렸을 때 자기 머리만큼 큰 부리로 손가락을 쪼았다.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 나는 동병상련을 느꼈다.

어미까치는 더 가까이 와서 울어재꼈다.

까치 울음은 내 가슴을 쪼았다. 곧이어 울컥 쏟아진 눈물이 내가 걸어온 세월을 적셨다.

죽음이란 것 앞에 한 번이나 당당했던 적이 있었던가?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는 죽음이란 놈 앞에 벌벌 떨면서 하루하루 버틴 나 자신이 초라해서 흘린 눈물이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욕망을 채우는데 급급한데 왜 나는 다른 세상에 던져진 듯 고독해야만 했던 것일까?


생명은 모두 소멸한다.

도로 위 주검이 된 고양이를 보고도 태연한 사람들이 옳은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눈물이 나는 것일까?

그렇다고 영생을 바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며 버리지 못한 욕망과의 처절한 전쟁인지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쉬운가? 욕심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쉬운가?

생각해 보면 내 삶의 전반부는 그 중간에서의 서성거림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19에 신고했다.

안내원은 이상한 이야기만 하고 끊었다.

나는 어떡해야 할지 몰라 담벼락에 앉아 울어재끼던 까치처럼 애만 태웠다.

한심스러웠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사치를 부리고 있나 싶었다.

새끼까치가 둥지에서 떨어진 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어미새가 안절부절 우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스스로를 나무랐다.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못 주면서, 지 혼자 사는 것도 벅차면서, 마음으로야 누군들 예수가 못되고 하나님이 못 될까.


나를 사탄이라고 놀리는 사장님 말씀처럼 내가 진짜 때려죽여야 할 사탄인지도 몰랐다.

행동 없는 내 연민 앞에 부끄러워졌다.

망연자실한 나는 모든 것을 잊기로 하고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출근길, 어제 새끼까치 둔 곳을 바라보았다. 새끼까치는 없었다.

나는 아침에 변기통에 앉았을 때처럼 내 안에 가득한 죄의식을 모두 비웠다.

그러나 돌아오던 길 현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어제의 그 새끼까치가 주검이 되어 있었다.

다시 우울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9살 나를 떠난 엄마처럼 더 이상 어미까치는 보이지 않았다.

어젠 어미새가 애 태우며 울었으나, 오늘은 내가 울었다.


나는 어미새 보다 어리석은 놈이었다.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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