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으로 말미암아 휴가를 얻다.
일을 하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간다.
어디든, 그냥 공기가 흐르는 곳이면 된다.
몸이 통째로 빠져나갈 수 없을 땐
창문을 열고 얼굴을 최대한 밖으로 뺀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다.
소리를 지나 공기가 느껴질 즈음,
막힌 공간에서는 공기가 썩어가는 것이 보였다.
썩고 있는 공기를 들이마시면
기도는 노폐물로 서서히 차올라
결국 막힐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불안이 커져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귀 안쪽에서 가늘고 깊은 ‘잉~’ 소리가 났다.
고막 너머, 더 안쪽에서 시작된 그 소리는
귓속을 따라 커져갔다.
점점 커진 소리가 귓구멍을 가득 채우면
다른 어떤 소리도 들어오지 못하고
온통 ‘잉~’ 소리로 가득 찼다.
몸의 모든 구멍이 막히면
압력이 높아지고
몸은 부풀어 오르다 결국 터질 것이다.
클레이 사격에 맞은 원판이 산산조각 흩어지듯
나도 그렇게 흩어질 것이다.
병원에서 6개월짜리 진단서를 받자
나는 진단서의 시간만큼 규정되었다.
공황장애.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
관리자의 걱정스러운 눈빛,
남편의 내일에 대한 염려,
아이들의 슬픈 눈동자,
그리고 180일간의 진단서.
그 네 가지가 협력해
나를 직장에서 떼어내
집으로 옮겼다.
묘쓰기에 깔린 잔디처럼
뚝 떼어다가 옮겨진 후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사람처럼
정해진 스케줄에 끌려
하루, 이틀,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을 보내고도
모자란 시간은
다시 3개월의 병휴직으로 메워졌다.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번은 산책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사람을 만난다.
아직 버스를 타거나
닫힌 문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만
곧 가능해질 거란다.
젊은 의사는
3개월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빈 시간 동안
옆방의 조금 더 나이 든 의사에게서 자료를 넘겨받았고
다시 만나 인사를 건넸다.
임신 중이었다는 걸
앉아만 있던 모습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
괜히 미안하다.
우울한 내 이야기를
그 아기도 들었을까.
혹시라도 보면 알아보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괜히 젊은 엄마가 안쓰럽다.
“이렇게 평생 가는 사람도 있나요?”라는 물음에
“나아야죠. 좋아져야죠.”
라고 말하는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조심히 건네는 마음이
괜히 고맙다.
약도 잘 먹고,
산책도 하고,
사람도 만나요.
하고 싶은 일은…
“아빠랑 낚시하고 싶어요.”
“그럼 낚시하세요. 아빠랑.”
휴가라고 해도
걱정을 멈추지 않는 엄마는
계속 물어볼 것이다.
아파서 그래서 잠깐 쉰다는 말을 꼭 들어야 하는 사람처럼 묻고 또 물을 것이다.
그럼 나는 거짓말을 하겠지,
남편도 내 거짓말 위에 또 거짓말을 보태겠지.
늙은 시골 노인네에게
죄짓는 것 같아
아빠와 낚시는 결국 못할 것이다.
아빠 대신 나의 보호자가 된 남편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걷는다.
출근 전에 잠깐,
퇴근하고 나서 오래.
남편은 내 손을 꼭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스스로에게
좋아질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
라고 주문을 건다.
마음을 말로 드러내지 못하는 그는
그저 인자한 표정으로
슬프게 웃는다.
어찌할 수 없는 아내가
못내 서운해서
조용히 웃는다.
괜찮은 척,
안 괜찮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