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콜라가 슬픈 이유

우리는 여전히, 길티플레저를 삼킨다

by 한이람



요즘 냉장고에 제로 콜라가 없으면 불안하다.

탄산이 필요한 건지,

단맛이 필요한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여전히 단맛을 먹고 싶다는 것.


건강을 생각해서 저당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혈당을 걱정하며 무설탕을 외치지만,

입 안은 여전히 단맛을 기다린다.

단맛은 줄이는 것이지, 포기하는 건 아니니까.


어릴 적 몰래 초콜릿을 숨겨 먹던 기억부터,

아이 재우고 몰래 먹는 비쵸비까지—

단맛은 늘 조금 숨어있는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달콤함이 입 안을 채우는 순간,

감정도 약간은 덜 외로워지는 느낌.

위로는 언제나 쓰다기보다는, 달다.




단맛은 살짝 복잡한 감정이다.
디저트를 먹고 “많이 안 달아서 맛있다”는 말엔
어쩐지 면죄부 같은 해명이 붙어 있다.


달콤함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지만,
당당하게 좋아한다고 말하긴 애매한 맛.


반면, 어떤 이들에겐 좀 다르다.
단맛은 죄책감보다 권리에 가깝고,
트윙키나 팝타르트 같은 간식은
“달다”는 걸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데선 ‘적당히 달다’는 설명은 필요 없다.


조절보다 즐기기에 가까운 맛.
입 안에서 빵! 하고 터졌다가,

혀에 허무함을 남긴 채 사라지지만

그걸 탓하진 않는다. 어차피 다시 먹을 거니까.




그래서일까.

단맛은 언제나 혼자 있을 때 더 간절해진다.

누군가와 나눠 먹는 디저트보다,

혼자 몰래 먹는 단맛이 더 뇌리에 남는다.


단맛은 혀를 만족시키고, 감정을 덮어준다.

“괜찮아, 오늘 하루 잘 버텼잖아.”

말 대신 그렇게 반응하는 맛.

그래서 단맛은 위로고, 가끔은 보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단맛 앞에서 늘 조금은 눈치를 본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식습관을 바꾸고,

건강검진 결과를 한 번쯤 받아본 후에는

‘이건 너무 단데…’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먼저 튀어나온다.


필요하지만,

그 필요를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딸려온다.


단맛은 그렇게 ‘길티 플레저’가 되었다.

입맛보다 자존감의 구조로 작동하는 보상 시스템.

사실, 당의 양보다 중요한 건

그걸 먹는 내가 얼마나 지쳤는가다.


이건 단맛보다, 하루의 무게를 덜어내는 방식이다.


단맛은 줄이지만, 포기하긴 어렵다.

감정도 그렇다.

덜어내는 건 가능해도, 없애는 건 어렵다.


그래서 우린 저당을 고르고, 제로를 선택하고,

그 속에 은근히 숨어있는 달콤함을 기대한다.


단맛은 혀에 먼저 닿지만,

사실은 마음을 향해 들어가는 맛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맛은 입 안에 남았는데, 마음은 왜 허전할까.

그건 위로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하루를 견디게 만든

감정의 포장지였는지도 모른다.




입에서 시작된 감각은,
때로 기억과 구조로 이어집니다.
‘씹다가 멈칫’은 감각의 흐름을 기록합니다.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읽을수록 더 맛있어져요.

프롤로그부터 맛보러 가기


keyword
이전 13화예상했던 그 맛이 아니야